잃어버린 낱말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by 피어라

첫째가 아직 어릴 때, 정확한 낱말을 발음하지 못하던 정말정말 아가였을 때, 그 짧은 혀를 움직여가며 간신히 'ㄹ' 비슷한 발음을 해내던 때, 그때 작고 여린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하던 단어들을 기억한다.


옥수수를 '오두두'라고 말해서 어른들을 웃게 하던 날도, 카시트에서 일어설듯이 흥분하며 터널을 보고 '넌들'이라고 외쳐대던 날도, 일부러 아이의 발음을 듣고 싶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시키기도 하던 날들도 선명하다.


어설픔이 아니라 특별함으로 다가오던 아이의 말들로 부모가 된 기쁨과 행복에 젖어있던 때.


둘째가 태어났다. 말은 느리지만 몸은 재빨라서 걸음마를 시작하고는 쫒아다니느라 정신없었다. 두 돌 무렵 에는 마냥 형을 쫒아다니며 흙을 파고 나뭇가지를 주워대면서 뛰어다니며 놀았다.


어느 날, 비가오고 난 뒤였는지 대청소를 하던 날이었던 건지, 아니면 받아둔 물을 쏟아냈던건지 두 형제가 마당에서 대문 밖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신나게 참방대며 놀았다. 큰 애가 흥겹게 음률을 만들어 "비상사태, 비상사태."하고 흥얼거리자 작은 애가 뜻도 모르면서 따라서 중얼거렸다. "비나나태."


머릿속에 영상을 촬영하기라도 한 듯 그 장면이 선명하다. 잡음없이 기록된 녹음파일을 재생하듯이 그때 아이들의 목소리도, 억양도, 말투도 찰박거리던 발소리와 물이 튀던 소리까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들린다. 그때 나는 아이들의 말과 몸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부러 물을 더 가져다 흘려주며 놀게 했었다.


벌써 십년 전 여름 이야기다.


이제 높게 지절대던 그때의 목소리는 변성기를 지나 굵직한 청소년의 목소리로 변했고, 혀가 입안에서 부딪히는 것 처럼 어설프게 나오던 낱말은 엄마에게 자신을 향변하는 분명한 단어들로 바뀌었다. 우리 사회의 현안이나 정치사회문제에 관해서도 곧잘 얘기하며 야무진 말로 부모의 오류를 지적하기까지 하고, 거칠더라도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도 안다.


문명화된 단어와 문장 틈에서 어린시절의 낱말을 떠올린다. 우기를 버텨낸 열대우림의 짙은 녹색보다 막 돋아난 새순의 연두빛을 띄고 있는 잃어버린 낱말들.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그 시절의 낱말들을 생각하며 잠든 아이의 발을 매만진다. 제법 거칠어진, 나보다 큰 발바닥과 팽이버섯을 닮은 발가락이 달린 아직은 나보다 작은 발바닥.


다시 만날 수 없는 소리들이 가끔 못견디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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