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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아 빚 갚고 할매할배 이사하던 날 -1

by 피어라 Sep 02. 2024

친정 부모님이 이사하셨다. 20년 넘게 지내던 동네를 떠나 낯선 곳, 낯선 집으로 옮기셨다. 교통도 더 불편하고 생활편의시설도 부족하고 집도 좁아지지만 이사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노부부에겐 갚아야할 빚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간신히 갚아나가고 있던 빚.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삼남매에겐 안타깝게도 부모의 빚을 대신 갚을 여유가 없었다. 늙어서 편히 지내기는 커녕 빚 갚을 생각에 허덕이던 친정 엄마에게 큰 딸이 말했다. 이사를 합시다. 이 집을 팔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차액으로 빚을 갚아요. 


그래도 친정엄마는 1년여를 망설였다. 

재산이라고는 분양받은 이 아파트 하나뿐인데, 오래 살아 몸에 익기도 하고 자식들 다 키우고 손주들 봐주면서 추억이 가득한 집인데 정이 가득 들은 집인데,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줄래도 이 집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다시 큰 딸이 말했다. 자식들한테 유산으로 떠넘길 거 아니면 이사하세요. 우리 집 근처로 오면 엄마도 편하고 나도 편하잖아요. 그렇게 큰 딸과 큰 사위는 부모님 집보다 시세가 싼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 서남부 소도시, 전철이 다니는 곳 근처, 자기 집과 가까운 곳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라 사정이 사정이라 집값이 비쌀 때는 거래가 이뤄졌고, 점떨어지는 와중에도 집이 안나갔다. 이전 집값을 생각하면 아까워서 못팔겠다고 마음을 접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집값을 더 내리기 전에, 다행히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집을 내놓은 지 근 1년 만이었다. 


거래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집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이, 나가려고하니 아무 소식없던 집이 번에 나가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집이, 뒤돌아섰더니 짜잔하고 눈에 들어오기한다. 정말 매끄럽게 집이 나가고 집을 계약했다. 귀신이라도 씌인건지, 이게 맞는건지 싶을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여차저차해서 친정 아빠와 함께 집을 알아보고 가계약까지 마쳤다. 남편이 모시고 다니며 애를 많이 썼다. 계약하는 날, 부동산에 80대 할아버지 두 분과 양쪽의 중년 딸들이 함께 모였다. 부모님이 이사하실 집은 85세 되신 할아버지가 혼자 지내시던 집이었다. 부인은 오래 전에 요양원에 들어가 계시고 4년 째 혼자 지내셨는데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에 딸네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신다고 했다. 매도인과 매수인의 사정이 비슷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두 할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역시 딸이 있어야된다고 말하셨다. 남편과 나는 마주보고 말없이 웃기만했다.

85, 84세.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뒷모습. 어딘가 닮았다.85, 84세.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뒷모습. 어딘가 닮았다.

거래가 이뤄지자 삼남매 단톡방이 불이 나기 시작했다. 꼼꼼한 계획형에 이미 자기 집을 지어 봤던 작은 딸이 특히 불타올랐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새로 구입할 것은 어떤거고 고쳐 쓸 것은 무엇인지 순식간에 목록을 작성하고 엑셀을 만들었다. 이사할 집의 평면도와 전개도를 구해 3D프로그램까지 써가며 필요한 가구와 물품을 정하더니 검색하고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또 검색하고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야말로 최종결재권자가 되어 진두지휘에 나섰다. 


작은 딸이 온라인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동안 큰 딸은 부모님 집에가서 세월만큼 쌓여있는 물건들을 버리고 치웠다. 낡은 살림들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비닐에 쌓인 것들을 풀러 정체를 확인하고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사 두 달 전부터 낡은 가구를 버리고 새 가구를 사겠다고 말했건만 부모님은 일주일 전까지 말을 바꾸셨다. 이게 좋아서, 이게 필요해서, 쓸만해서, 애착이 가서, 정이 가서 버렸다 주었다, 내놨다 들여왔다 몇 번을 반복했다. 전에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건지, 팔랑팔랑 마음이 바뀌는 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두 노인네의 정서적 케어도 이사를 위한 준비 중에 큰 몫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사 전날, 멀리서 찾아온 아들과 며느리가 새벽 2시까지 냉장고 정리를 하며 쓰레기를 버리는 동안 할매는 부엌에 뻘건 다라이를 펼쳐놓고 겉저리를 담갔다. 냉장고 안에서 튀어나온 알배기 배추 3통 때문에. 이사가서 먹을 김치가 없다며 꾸역꾸역 담가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시어머니를 보며 우리 착한 며느리는 얼마나 목이 막혔을까.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두 딸은 또 얼마나 기가막혀 했을까. 결국 그 김치를 들고 포장이사가 진행됐다.


이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또 혼돈의 카오스, 전설의 레전드가 줄을 이었다. 이삿짐도 안 뺐는데 들어올 집에서 샷시교체하겠다고 들이닥쳐서 설왕설래, 계약하러 가서는 할배가 챙겨온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에 찍힌 도장이 달라서 혼란, 결국 새로 도장을 파서 인감증명을 마치고 계약을 하는 동안 할매는 가져간댔다 버린댔다 왔다리갔다리 오징어다리를 찍어대서 남동생 혈압 대폭 상승. 이 와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새 집으로 가던 남편의 네비는 작동을 멈춰서 집을 못 찾아 지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사가 원래 이렇게 다이내믹 코리아를 찍는 거였던가. 대하장편소설 분량의 이야깃감이 쏟아져내렸다. 아, 이사는 과연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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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도저히 힘들어서 다 못쓰겄습니다. 투비컨티뉴드를 적어두고 언젠가 뒷 얘기 마무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무사히 이사는 완료했고, 주말내내 청소해대느라 저는 오늘 하루 완전히 뻗어있었답니다. 피곤함을 무릎쓰고 연재글을 올리니 언넝 좋아요 눌러주십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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