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 또 당했다.
이번에는 인터넷 대전이란다.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줄여서 대전. 익명으로 뒷담화내용을 보내면 캡쳐해서 대신 게시물로 올려주는 인스타 계정이다. 처음 알았다.
4교시 수업 중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긴급한 전화가 왔다.
"부장님, 죄송한데 긴급하게 6학년 담임선생님들 모였으면 합니다. 하교 전에 해결해야할 거 같아서."
인스타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끼리 무분별한 학교폭력이 벌어지고 있으니 확인해야한다는 얘기였다. 안그래도 인스타 게정 DM사용에 대해 이전부터 지도해오고 있었는데 또 무슨 일일까, 욕하고 싸웠나 싶어 급히 회의실에 모였다. 심장이 덜컥 떨어질 것같았다.
보여주시는 핸드폰 화면에 학교이름이 붙은 계정이 하나 보였다. 학교이름에 대전이라고 붙여서 프로필이미지까지 제법 그럴듯하게 만든 계정밑으로 수십개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누구 잘생겼다 누구 예쁘다, 누구 애인구한다, 누구는 헤어져라, 이런 장난스런 게시글 사이에 학교와 담임교사 비방이 눈에 띄였다. 이정도는 괜찮다. 없는데서는 나랏님 욕도 하는 데 까짓거.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상당수 게시물이 우리 학교 아이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난하거나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내용이었다. 누구 재수없다, 다 남미새다 정도는 약과고, @@년, XX한다, 똥냄새난다, 틀딱이다, 인생나락가라 등 욕설이 대다수였다. 근거없는 루머와 익명의 힘을 빌린 조롱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고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며 동조하는 아이들, 팔로우 하고 클릭하며 조용히 지켜보는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악의가 가득했다. 옛날에는 구석진 화장실벽에나 써있던 낙서들이 이제는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너무 쉽게 떠다닌다.
누굴까? 누가 이렇게 아픈 짓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는걸까? 지난 번 학교무단침입사건 때처럼, 알고보니 매일 얼굴 보고 생활하던 우리 반 아이라면 어찌하나.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안타까움에 실망감이 더해졌다. 한 학기 동안 정성껏 가르쳐서 알만큼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로 아미타불이 된 것 같아서.
교실로 돌아와 무섭게 분위기를 잡으며 아이들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굳은 표졍으로 면담을 시작했다. 살짝 심각성을 과장해서 말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욕죄, 기타등등 법적인 문제도 들먹여보고 감정에도 호소해본다. 친구끼리 얼마나 상처가 되고 배신감이 들지, 고도의 연기력을 발휘하지만 나는 안다. 이 때 뿐인것을. 지나고다면 또 잊혀진다는 것을.
알면서 속고 모르고도 속는게 부모라는데, 교사도 다르지 않다. 매일 속아도 또 속는다. 믿었던 아이들의 일탈에 속이 쓰리고 마음이 헛헛하다. 부루투스에게 배신당한 카이사르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래 6학년 하면서 이 정도 사건사고가 없을까, 이 정도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면서도 속으로 꽤나 아프다. 앞으로 졸업 전까지 몇 번이나 더 겪게 되려는지.
아이들이 작정하고 숨기려고 들면 찾아내기 힘들지만 다행히 계정을 만든 아이를 찾았다. 뜻밖에도 6학년이 아닌 5학년 아이였다. 그래서 더 충격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으로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우리 반 아이가 아니라서, 우리 학년 아이가 아니라서 마음이 놓인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서일까?
이제 학부모 연락, 생활지도와 상담, 가정통지 등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추가로 지도하고 설명하고 가르치고 잔소리하고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해도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이어질거다. 아이들의 마음이 커다란 수조에 담긴 물이라면, 물이 오염되지 않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가정에서 부모가 관리해야한다. 교사가 하는 일은 깨끗한 물을 한 두 컵 부어주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또 가르치고, 또 당부한다. 무거웠던 오후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 바른 자세를 하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얘들아, 누가 나를 때렸다고 치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고 치자. 그때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 뭘까?
하나는 네가 나를 때렸으니 나도 너를 때릴거야.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똑같이 해줄거야.
또 다른 하나의 선택은 뭘까? 도망가는거?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거? 물리적인 폭력 상황이 심각하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겠지.
그것도 좋지만 친구들과 갈등 상황에서라면 말이야, 왜 그러는지 물어봐주는걸 선택할 수 있어.
왜 화내? 왜 때렸어? 왜 소리지른거야? 하고 물어봐줘.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니? 나도 차분해지지만 상대방도 침착해진단다. 서로 가라앉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돼. 나도 바뀌고 친구도 바뀌는 방법이야.
맞상대하면서 서로 때리면 어떻게 될까? 더 큰 폭력으로 번지겠지.
선생님도 부부싸움할때 종종 사용한단다. 이해가 되면 대화로 풀어보고 안되면 더 설명을 요구해.
자신을 분노와 복수의 자리에 두지 마. 너의 자리를 옮겨보자.
나는 이런 태도를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구나.
이런 마음을 너희들에게 주고 싶다.
나의 친밀한 배신자들아, 바로 너희들에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