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의 프롤로그
3월 1일 삼일절. 아침부터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내일이 개학인데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학교에 가서 학습지라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일하기 싫고 좀 더 쉬라고 몸은 요구하고, 마음은 불편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미 교육과정부터 시작해서 동학년 선생님들과 새학년 시작을 위해 준비를 다 마치고 3월 첫 주 할 일을 다 정리해놨음에도 불안과 걱정으로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하루를 피곤하게 보내버렸다. 그만큼 마음이 쓰였다. 나는 올해 6학년 부장이니까.
학교에서 12월이면 학년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하지만 동시에 다음 해에 어느 학년을 어느 선생님과 함께 맡게 될 것인가로 치밀한 눈치싸움을 벌이느라 바쁘다. 아이들이 드세서 생활지도가 어렵거나 진상민원인 학부모가 있는 학년은 되도록 피하고 싶고, 이왕이면 업무가 적은 학년을 맡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이니 그렇다. 나 역시 그랬다. 되도록 덜 힘든 학년, 덜 힘든 아이들, 덜 힘든 업무를 찾아보고 있었다. 알음알음 다른 사람들이 몇 학년을 지망하는지 알아보고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의 수를 예측해보며 6개 학년 중 어디를 갈 것인가 계산해보고있었다.
학교라는 조직은 개인의 잘 할 수 있는 일을 나눠서 맡는 곳이 아니다. 관리자 역시 교사 개인의 성향, 자질, 능력을 고려해서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매년 바뀌는 구성원들로 근무년수, 업무곤란도와 형평성, 학급 수, 성별, 나이, 임신출산이나 휴직예정 등을 고려해서 업무와 학년이 배정되다보니 특정 업무를 하고 싶다고 맡게 되거나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가 없다. 학교마다 업무의 종류와 유무도 다르다. 그 와중에 나는 오래전부터 맡고 싶은 업무가 있었다. 지금 학교에서는 따로 없는 업무지만 새로 만들어서라도 진행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바로 독서교육이다.
우리 반에서만 진행하던 읽기와 쓰기를 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천해보고싶기도 했고, 예산을 확보해서 책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교사나 학생 독서동아린, 책쓰기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학년부장을 맡아 일년살이를 책임지는 것도 의미있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 독서와 관련해서 한 번 추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장을 맡지 않고 이 업무를 해보고 싶다고 한껏 야욕을 드러내며 교감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뒤에 6학년 부장 신청서에 도장을 찍었다.
6학년 부장이라니. 모두가 힘들다고 기피하는 최고 학년, 생활지도가 어렵고 졸업과 평가까지 수행해야할 업무가 더 많은 학년, 그것도 아이들과 잘 통하는 젊고 기력넘치는 나이도 아닌 50이 넘은 나이, 승진할 것도 아니라 부장점수도 필요없는 내가 말이다.
물론 나름 계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학교로 옮길 때를 생각해 가산점이 있는 6학년을 이 학교에서 한 번은 할 필요도 있었다. 원치않는 다른 업무를 하느니 학년만 잘 책임져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6학년 올라오는 아이들을 이미 4학년 때 담임했던터라, 학년 전체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점, 또 그때 아이들과 제법 잘 지냈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맡아서 일 년을 보내야한다면 선배교사로 후배교사들을 돕고 관리자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부장 중에 한 명쯤 있어야겠다는 아주 작은 사명감도 있었다.
이러저러 끝에 나는 24학년도 6학년 1반을 맡게 되었고, 이후 전입교사와 전출교사가 들고나면서 전체적으로 업무와 학년배정이 완료되었다. 6학년은 나 포함 6개 반으로 꾸려졌고 함께 2월 신학기 준비기간을 거쳐 1학기 계획까지 마무리했다. 2월 말이었다.
정신없었던 2월 출근을 마무리하고 짧은 봄방학 기간을 지나 3월 1일. 이상하게 자꾸 긴장되면서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불안하고 다음 날이 걱정되어 하루종일 버둥댔다. 괜찮을까? 6학년 부장, 잘 할 수 있을까? 무사히 일년을 보낼 수 있을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넘쳐나도 시간은 흘러 3월 2일 아침이 되었다. 24학년도 6학년의 첫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