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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16. 2024

한강은 노벨상, 6학년 졸업생은 무슨 상?

프롤로그

*제목이 좀 과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쁨이 사라지지 않아 도파민이 넘치는 상태라 뇌에서 흘러나오는대로 지어서 그렇습니다. 어딜 빗대냐고 노하지 말아주시고 기쁨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셔요 ^^*


  3월 2일, 약간 긴장되고 어딘가 어색한 얼굴로 교실에 앉아있던 6학년 아이들도 일 년을 잘 마치고나면 졸업을 맞는다. 다들 키가 자라고 마음이 커진만큼 온 몸으로 호르몬을 뿜어내며 초등학교를 떠나간다. 졸업은 이별이 아니라 그야말로 새로운 출발일 뿐이다.


  요즘 졸업식에서는 예전처럼 거창한 시상이 없다. 지역 국회의원부터 무슨무슨 단체까지 줄줄이 이어지던 대외상도 없는 경우가 많고 6년 동안 결석이 없으면 주는 개근상도 사라진지 오래다. 보통 졸업장과 공로상, 졸업표창정도만 수여한다. 우리학교도 기본적으로 학생자치임원이나 방송반 활동 이력있는 경우에 주는 공로상이 있고 졸업생 전원에게 졸업장과함께 졸업표창장을 수여한다. 내년 1월 초 졸업식에서 졸업생 시상을 위해 늦어도 9월 말에는 계획을 세워 결재맡고 학운위 심의까지 마쳐야한다.


  작년 졸업생 시상 계획 한글 문서를 열어놓고 고민에 빠졌다. 졸업생표창부문때문이다. 전년도 우리 학교에서 졸업생 아이들에게 준 표창부분은 모두 8개.  민주시민의식 부문, 의사소통능력 부문, 건강체력실천 부문등 교육과정에 제시된 역량을 토대로 항목을 정하고 그러한 성취를 이룬 아이들에게 상을 주었다. 6학년을 마치는 아이들이 어떠한 역량을 지녔는지 칭찬하고 격려하는 시상이다. 모두에게 하나씩 주는 상이다보니 무난한 아이들에게는 어떤 상을 줘야할지도 고민이 된다. 그냥 다 받상이 아니라 아이들 명, 바로 내가 받는 특별한 상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작년과 다른 올해 6학년들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그 특성을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졸업표창을 요식행위나 형식적인 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상, 만족해하는 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게 변화를 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따와서 상이름을 귀염핑, 재능핑, 매력핑 이라고 지어볼까도 생각했다. 결재가 안 날테니 접었지만. 졸업시상계획을 위해 협의하던 중 동학년 선생님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주셨다. 스파이더맨 같은 '친절한 이웃', 우영우에서 나왔던 '봄날의 햇살'. 세상에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상을 받는다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마음으로부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어두운 방안에 작은 스탠드를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서 발휘하는 미덕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다정한 마음으로 배려를 잘 하는 아이의 마음, 소통은 어려워하지만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의 작품, 마음껏 움직이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힘찬 너의 발걸음, 이라고 적어보았다. 그 순간 마치 처음부터 속에 들어있었던 것처럼 다음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햇살, 미소, 꿈, 눈길.. ....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고력이 필요한 과제 해결을 좋아하고 지적인 탐구에 열정적인 아이에게는 집중하는 태도를 칭찬하는 의미를 담아주자, 그림도 잘 그리고 창조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예술성이 빼어난 아이들에게는 손길을 칭찬하는 말을 넣어주자, 친구들의 마음을 살피고 다정한 마음이 빛나는 아이들에게는 포근한 마음이라 불러줘보자. 순식간에 6개 부문이 만들어졌다. 다 적어놓고 보니 어딘가 설레면서 뿌듯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문서를 수정했다. 이렇게 표창장 이름을 정하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나누었더니 유별나다거나 어색해하지 않고 한 편의 시 같다면서 반겨주셨다. 다행스러웠다. 교감선생님과 마지막 협의를 마치고 결재를 올리면서 누구에게 어떤 상이 어울릴지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아이들이 어떤 얼굴로 상을 받을까 상상해보는 동안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 상을 받으며 활짝 웃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 상을 받을 날까지 백일쯤 남았을까? 아직 졸업 전까지 시작도 안 한 일들이 남아있는데 나는 벌써 이별을 준비한다. 2주 뒤에 학예회도 해야하고, 공개수업도 남아있고, 피구대회도 마쳐야하는데, 중입원서작업도 생기부 작업도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다. 끝을 알고 있으니 한 순간 한 순간이 더 소중하다. 떠나갈 아이들을 등 뒤에서 응원하는 내 작은 마음이 무사히 전달 되도록, 그날까지 잘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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