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앨범 촬영. 아이들은 이 말을 들으면 미묘하게 술렁이기 시작한다. 외모에 자신없다고 싫어하는 아이, 누구와 찍을지 걱정하는 아이, 사정이 있어 학교를 못오는 아이까지 사정도 다양하다. 그런 술렁거림의 시간이 지나고 공지한 촬영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바빠진다. 펌이나 염색을 미리 하는건 기본이고, 옷과 소품을 주문해서 맞춰입기도한다. 모둠별 컨셉을 정하기도 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며 다양한 포즈도 연습해본다. 졸업앨범이라는 물성을 지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보다 다같이 사진을 찍는 다는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 같다. 이날만은 다 큰 척하던 열세 살 어린이들이 유치한 반짝이 공주왕관을 써도 괜찮고 남자애들끼리 사과머리를 하고 애교포즈를 하거나 동물잠옷을 입고 복도를 활보해도 용서된다.
3월, 학부모와 학생대표가 포함된 졸업사진선정위원회에서 업체를 고른다. 업체마다 컨셉과 특색, 컷구성이 달라 그때그때 구성원들의 취향에 따라 앨범과 스튜디로를 선택한다. 결정되고 나면 대개 4월이면 첫 촬영을 시작한다. 증명사진처럼 반듯한 컷도 찍고, 학사모와 가운을 입은 컷을 찍거나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컷도 찍는다. 중간중간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 체육대회같은 행사들이 있으면 촬영기사님이 오셔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신다.
"자, 머리카락을 넘기고, 입꼬리를 좀 더 올려서, 그렇지! 네가 제일 표정이 좋네!"
"네가 이 반의 영화배우구나! 너는 졸업하면 헐리우드 가야겠다!"
카메라 앞에 선 모든 아이들에게 네가 제일 예쁘다는 하얀 거짓말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아이들에게 폭격수준으로 칭찬을 늘어놓으시는 사진사님의 긍정화법이다. 어떻게든 칭찬거리를 찾아 칭찬하며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실없는 농담으로 자연스런 웃음을 유도하신다. 재채기와 사랑처럼 경력과 짬빠도 절대 속일 수 없는 게 분명하다. 사장님의 프로의식과 연륜 더거분에 머쓱해하던 아이들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세를 바로하며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신록이 짙어지면 야외에서 단체, 조별 사진을 찍는데 이게 졸업사진의 백미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여러가지 포즈와 소품을 활용해 한껏 자신들의 개성을 뽐낸다. 독특한 분장과 의상으로 유명해진 의정부고 졸업사진만큼은 아니지만 이때만은 아이들도 런웨이를 걷는 베스트드레서라도 된 양 멋지게 폼을 잡는다. 제일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 소통하길 어려워하는 준이는 새벽배송으로 오늘 아침에 뜯은 새 옷을 입고 왔다. 주말에 친구들과 쇼핑하며 옷을 맞춘 은이는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아 집게핀으로 응급처지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온갖 사건들을 뒤로 하고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웃는다. 수줍어하는 아이들도 친구들의 이끌림에 용기를 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나중에는 서로서로 소품도 빌려주며 자신감있게 포즈를 취한다. 다물려있던 꽃봉오리가 벌어지며 만개하는 장면을 슬로우로 보면 이런 기분일까. 찍는 사람도 기분좋게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며 순조롭게 촬영이 마무리됐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추가 촬영이 이어진다. 전입생이나 결석생도 마무리로 찍고 1학기와 달라진 표정의 단체사진도 찍는다. 겨우 몇달 지났을 뿐인데 한결 의젓해진 표정들이다. 아이들도 그새 카메라를 든 촬영기사님들과 친숙해져서 친근하게 말을 건낸다.
"사장니임, 저 얼굴 보정도 해주시나요? 쌍카풀 만들어주세요."
"저도요, 저는 얼굴 좀 작게 해주시면 안돼요?"
적극적인 아이들의 어필에도 산전수전 다 겪으신 사장님은 능글능글 담을 타고 넘어가시며 아이들 자세를 잡아주신다. 나도 사장님의 지휘앞에 작은 학생일뿐이다.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수업장면을 찍으신다길래 책상 사이로 들어갔더니 손을 저으시며 하는 말.
"선생님 비키세요. 애들이 안 보여요."
그렇지, 주인공은 내가 아니지. 아이고 민망해라 아이들의 웃음을 따라 1분단 끝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이어서 제일 앞에 들어갈 단체컷 차례다. 다같이 화이팅하는 포즈를 요구하시면서 다이나믹하게 왼팔을 사선으로 앞으로 뻗고 상체를 살짝 뒤로 기울이라는 고난도 주문을 하신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포즈를 취하는데 문제는 나였다.
"선생님, 과하세요."
뻣뻣한 몸이 어디가나, 내밀고 젓히고 이게 입력은 됐는데 출력에서 오류가 났다.
사장님의 조용한 한마디에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던 나를 돌아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선생님, 이게 뭐에요! 그게 아니잖아요"
에라 모르겠다. 내 앨범도 아닌데. 흥.
그 사이 몇 번 찍어봤다고 이번 촬영은 속전속결로 끝이났다. 가을 학교행사촬영도 끝나고 나면 이제는 담임들이 찍은 사진들을 추가로 넣어서 편집에 들어간다. 3월부터 모아온 아이들의 사진들 중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며 사진을 골라 업체에 보낸다.
이후 11월에는 출력본을 가지고 교정작업에 들어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각 반 아이들의 사진들을 먼저 살펴보면서 한껏 즐기고 오탈자를 확인하는 일이 왜이리 즐거운지 모르겠다. 이름과 사진이 다른 경우, 누군가 눈 감은 사진, 포즈와 구성이 비슷하게 겹친 페이지 등을 찾아 교정을 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행동을 바꾸는 일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하는 작업이니 힘들다는 생각이 안든다. 이렇게 고치고 여러번 확인해도 어딘가 틀리는 곳이 나오면 이미 앨벙제작이 끝났어도 스티커를 따로 만들어 붙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오탈자는 살아있는 요괴가 분명하다.
이렇게 완성된 앨범을 받아 연구실에 쌓아두면 추수를 마치고 곳간이 그득한 농부나 크리스마스 전야 선물을 잔뜩 쌓아둔 산타같은 마음이 된다. 나중에 나중에 이 앨범을 보는 아이들이 어이없어하며 빵터지거나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가리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혼자 보든 여럿이 보든, 자신의 연인, 혹은 자녀와 함께 보면서 자신들의 성장을 확인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즐거워하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담은 졸업앨범은 곧 사라진다. 사라지는 게 맞는 방향이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 두껍고 무거우며 부피도 많이 차지하는 종이로 된 앨범, 그것도 나와 별 상관없고 모르는 다른 반 아이들까지 들어있는 앨범이 아이들에게 가치있는 물건으로 남을까? 몇 만원씩 들여가며 구매할만한? 얼굴과 이름이라는 중요 개인정보가 책 한 권에 담겨 누구에게라도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만큼? 딥페이크 사건등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 얼굴이 악용되는 상황을 애초에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학생과 교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종이에 인쇄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시도해도 된다. 학년전체가 들어가는 앨범이 아니라 학급별로 구성하는 앨범도 기획하는 경우가 생겨나고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시작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위한 고민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마지막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사 열심히 앨범촬영을 준비한 까닭을 깨달았다. 언제 또 6학년을 맡게 될지, 그때도 졸업앨범이라는 문화가 남아있을지 모르니까. 이번이 마지막 앨범이 될지 모르니까. 그러니 올해가 마지막이라면 멋지게 장식할 수 있도록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해달라고 졸라가면서 사장님을 열심히 괴롭혀야겠다. 근사한 앨범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