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고아진 뼈에 붙은 살코기가 젓가락질 몇 번으로 흐물, 분리된다. 빠알간 국물에 한 번 더 적시면 짭조름한 맛이 더해져 쫀득하게 씹힌다. 감자는 푹 익어 서걱댐 없이 말캉하고 국물에 간이 밴 시래기는 미끈덩대며 입안을 휘젓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들통에 한가득 끓여 며칠간의 끼니를 책임져 준 시래기 감자탕은 내 소울푸드 중 하나다.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소울푸드가 몇 가지 더 있다. 간장게장도 그중 하나. 입과 손에 잔뜩 간장을 묻혀야 하는 불편함은 알이 꽉 찬 게 몸통을 앙, 깨물었을 때 입안으로 쏙 흡입되는 게살 맛을 생각하면 감수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마지막에 등 껍데기 속 내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이 또 진미.
찬 바람이 거세질 때가 되면 머릿속이 대게로 꽉 차 있다. 커다란 통에 대게 두어 마리를 삶아내서 식탁 넓게 펼친 큰 쟁반에 내려놓으면 오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위와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냈다. 다리 살이 끊기지 않게 길게 뽑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랑스러운 능력이다. 집게발 속을 다 비워내면 가운데 남은 힘줄을 잡아당겨 집게를 싹둑싹둑 움직여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재미였다.
아버지가 종종 술안주로 드시던 생선회와 도가니 수육, 비교적 최근에 아픈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가 솜씨를 발휘하던 곤약 넣은 어묵국과 진한 국물의 소고기 미역국, 카레 닭볶음도 기억 한 편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내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요리는 미천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 일을 하거나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우왕좌왕이었던 나는 매번 밥을 차려줄 수 없으니 아이들이 알아서 쉽게 꺼내먹을 수 있는 밑반찬 위주로 준비했고 그마저도 직접 만들기보다 몇 가지 구입해서 냉장고에 쟁여두면 미리 냉동해 둔 밥과 함께 아이들이 찾아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도 멋진 일품요리보다 간단한 밑반찬 위주고 그 반찬들과 밥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의 습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너희는 엄마가 하는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라고 물으니 볶음김치, 어묵국, 두부조림 등의 반찬 종류를 말한다. 혹시라도 엄마가 기분 나쁠까 봐 최대한 많은 수의 반찬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얼굴들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언급한 것 중 그나마 요리다운 건 가끔씩 만들어주었던 밀푀유나베와 초간단 레시피를 자랑하는 카프레제 샐러드 정도다.
사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요리가 서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먹는 것만 좋아할 뿐 요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것은 미각이나 솜씨보다는 성격의 문제가 큰 것 같다. 성격이 너무 급하다. 요리는 시간의 예술이라 할 만큼 준비하는 시간과 조리하며 기다리는 시간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 법인데 나는 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다른 요리를 위한 칼질을 동시에 하면서 생선을 굽다가 태워 먹기 일쑤다. 그런 실수를 자꾸 반복하는 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주부가 되어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는 기쁨도 물론 있지만 그 시간을 일을 하거나 글을 쓰고 공부, 독서를 하는 등의 다른 것에 쓰고 싶은 것 같다. 또 요리란 다양한 재료가 많이 들어갈수록 맛있는 법인데 나는 재료 사는 비용을 아까워한다.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한다고 식재료에 욕심을 내 본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때마다 뒤통수를 때리는 카드값에 정신이 혼미해졌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재료만 넣고 요리를 하다 보니 별로 특별한 맛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은 ‘여자라고 요리를 다 잘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기죽지 말자고 독려하며 살아왔었는데 50이라는 숫자는 그런 마음마저 흔들리게 한다. ‘오십 대 아줌마’로서 내세울 만큼 할 줄 아는 요리가 없다는 것은 콤플렉스라 부를 만하다. 장차 딸아이들이 독립했을 때 가르쳐 줄 레시피도 별로 없고 어느 날 사윗감이라도 집에 오는 날, 발휘할 수 있는 요리 솜씨가 없다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난감하다.
그럼 이제라도 요리를 제대로 배우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또, 그 정도는 아니다. 걱정은 걱정일 뿐 이제까지 내외하던 요리와 관계를 새삼 다시 정립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앞으로는 그나마 아는 레시피를 가족들에게 알려주어서 나 없이도 해서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딱 그 정도까지가 요리에 대한 나의 필요인 듯하다.
요리를 못해서 아쉬운 점은 부모님이 해주셨던 나의 소울푸드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몇 년 전부터 친해진 동네 친구와 입맛이 맞아 내 소울푸드 ‘도장 깨기’를 함께 하고 다닌다. 같이 도가니 수육과 감자탕 맛집을 방문했었다. 종종 만나 식당에서 회와 함께 소주잔도 기울인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요리할 필요성을 더욱 못 느낀다.
나이가 들어 필요성을 더 느낀다고 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이 나이 먹도록 요리 솜씨가 비루하여 어쩌려고 그러나, 하는 걱정도 잠시, 앞으로도 내 요리 인생에 반전은 없을 것 같다. 50대가 아니라 ‘60대, 70대 여성’이 되어도 ‘이 대신 잇몸’의 방법을 찾으며 맛있게 먹고, 스트레스 덜 받고 살아갈 것이라는데 내 확신의 추를 하나 더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