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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Sep 03. 2024

술과 나, 애증의 연대기 1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래서 조기 교육이 그렇게 중요하다 했나 보다. 굳이 세 살 버릇이 언제까지 가는지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어릴 때 뭘 보고 자랐는지가 인생 전반을 좌우함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어진 술에 대한 나의 애착만 보더라도.      


내 어린 시절에는 동네 슈퍼에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지 못한다는 법이 없었다. 종종 아버지 심부름으로 소주를 사러 가면 슈퍼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이 술 누가 먹니?” “아빠요.” 나는 집에 와서 아빠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해서 아빠 인상이 안 좋아지는 건가?” 아빠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뭐, 인상이 나빠져도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변명의 여지없는 ‘술꾼’이었으니까. 70대 중반까지, 1일 1병은 습관이었다. 모임이 있어 더 드시는 날에도 웬만하면 취하지 않을 만큼 술이 셌다. 마시다가 어느 정도 취하면 ‘그만 먹겠다’며 멈추셨는데 나는 그런 점이야말로 진정한 술꾼의 면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술이 센 이유를 ‘조 씨’에서 찾았다. ‘조 씨는 술꾼들이다’라는 명제에 억울해하는 조 씨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버지 주변의 조 씨들은 그랬나 보다. 일단 친할아버지가 그랬다고 전해지고 아버지 형제들 또 그 자녀들도 거의 그랬다. 친가 쪽 친척과 만날 일이 있으면 술이 빠진 적이 없음을 기억한다. 모였다 하면 조 씨들은 잔을 부딪치며 술에 대한 각자의 지론을 펼쳤다. “술은 빈속에 마셔야지 제격이지” “독주부터 시작해야지” “이런 안주엔 소주지” “저런 안주엔 막걸리지” “술에 취해서도 정신이 온전하면 냉혈한이지” “그래도 술은 섞어 마시면 안 돼” 등의 대화가 가득한 모임은 마치 술에 대한 공론장을 방불케 했고 그 이야기들은 인생의 아포리즘이 되어 내 몸속에 각인되었다.      


오빠와 내가 순차적으로 대학생이 되던 순간에, 아버지는 또 하나의 지론을 발표하셨다. “술은 부모에게 배워야지” 내 술 인생의 스타트 총성이 울리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는 이십 평생 아버지를 보고 배운 덕에 어디 나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 그리고 주도에도 어긋나지 않을 만큼 잘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딸내미와 술잔을 부딪치며 뿌듯해하는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 앞에서 그 자리가 필요 없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자리를 계기로 아버지와의 술자리를 즐기게 되기도 했고.



     

보고 배운다고 다 스승과 같은 ‘꾼’의 경지에 오르지는 않는 것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해 6월, 내 생일이었다. 1학년 때부터 과대표를 맡았던 나는 아는 동기와 선배가 많았고 그들 모두가 생일 축하를 위해 과 단골호프집에 모였다. 미리 챙겨 온 용돈을 친구에게 맡겨서 계산을 부탁한 뒤 나는 술은 섞어 마시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따라주는 대로, 모든 종류의 술을 다 마셨다. 과대표인 나에게 이들의 축하는 당연한 것이라 여겼고 그들의 술잔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이를 증명하려 했다.    

  

아버지처럼 ‘이제 그만 먹겠다’며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 나를 자신의 집으로 옮기자고, 자취를 하는 친구 K가 제안했던 것 같다. 몇몇 남자 동기와 선배들이 나를 들쳐업고 학교 뒷골목을 따라 K의 집으로 향했고, 골목에서 연애를 즐기던 한 학번 위 커플 중 남자 선배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업고 있던 동기와 바통 터치를 했다. 나는 그의 등 위에서 “아, 어떡해요, 오빠 죄송해요, 저 OO언니에게 혼나겠어요.”라는 말을 100번쯤 했다고 한다.   

  

자취방에 도착한 뒤 나는 널브러졌고 K는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를 안심시켰다. 나는 K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 잠이 들었고, 새벽녘, 아픈 머리를 감싸며 잠에서 깼다. 아직 잠들어 있는 K의 옆에 고맙다는 쪽지 하나를 남겨둔 채 집으로 향해서는 끌끌 혀를 차는 엄마의 시선을 뒤로하고 샤워를 했고 서둘러 다시 등교를 했다. 전날 자리를 같이 했던 이들이 ‘어찌 그리 멀쩡한 모습이냐’며 놀라워했다.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만큼은 아니어도 술로 인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직장 다니던 어느 날, 회식 이후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눈을 떠보니 버스 차고지였던 적도 있다. 기사가 왜 나를 두고 내린 건지 모르겠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차 안엔 나뿐이었다. 당시 광역버스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조그만 창문이 있었는데 나는 마치 요가를 하듯 몸을 잔뜩 웅크려 그 창문 밖으로 빠져나온 뒤 깜깜한 어둠을 뚫고 집으로 걸어왔다. 요즘의 광역버스엔 통창뿐이던데, 그 시절에 그랬다면 꼼짝없이, 버스 안에서 밤을 새야 했을 것이다.   

 

술과 관련된 이런 창피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내가 아버지만큼 술이 세지도 않고, 중간에 끊을 만큼 자제력도 없으면서 계속 마셔댄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음주 후의 민망함과 자괴감은 짧으면 3일, 길어봤자 일주일이 가지 못했고 이런 상황은 항상 반복되었다.


*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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