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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Jan 02. 2021

여자가 엄마가 되는 시간, 100일

3개월의 법칙

100일의 기적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100일만 되면 이제 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던데, 신생아 시기의 힘듦을 이 100일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어떤 힘들 일이라도 끝이 보이면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우선 토하는 문제 좀 어떻게 해결되길 바랐다. 어디 이상이 있는 건 아닌데 하루에 한 번 꼴로 분수토를 하곤 했다. 아직 위장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토를 자주 한다던데 이건 너무 잦았다. 과식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얼마나 먹는지 알 수 없어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주변에선 100일 넘어가면 괜찮아진다길래 시간이 답이구나 하고 기다릴 뿐이었다.


잠자는 것도 문제였다. 일단 토를 자주 하다 보니 수유 후에 눕히기가 무서웠다. 트림을 시키더라도 눕히면 토하기 일쑤.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기가 누워서 토하면 기도가 막힐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대처법은 단순했다. 계속 안고 있기. 내 몸이 축나더라도 하루 종일 안고 있는 게 마음 편했다. 심지어 간신히 눕히면 등 센서가 발동되어 바로 깼기 때문에 차라리 안고 있는 게 편했다.


그렇게 100일이 흐르자 나에게도 기적이 찾아왔다. 아이는 더 이상 분수토를 하지 않았고, 등 센서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누워 자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나의 기적은 드디어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거였다. 그동안 새벽에 수유하랴 트림시키랴  그냥 밤새 소파 생활을 했다. 소파에 앉아 수유하고 가슴팍에 아이를 안고 트림시키다 나도 아이도 그대로 잠들었다. 다행히 리클라이너 소파라서 살짝 누운 자세로 잘 수 있었다. 100일 이후에도 새벽 수유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젠 아기도 나도 함께 침대에 누워서 잔다.


안타깝게도 통잠이라는 기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지만 100일이 지나니 달라지는 건 많았다. 우선 아이 보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어느 정도 패턴도 잡히고 우는 것도 거의 없어졌다. 그저 원하는 바가 있으면 살짝 칭얼거리는 정도일 뿐 이전처럼 세상 떠나가라 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 돌보는 게 쉬워진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나 자신의 변화때문이었다. 100일의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이제 내 아이 사용 설명서가 머릿속에 빠삭하게 그려졌다. 어쩌면 토를 더 이상 잘 안 하는 건 아이가 젖 먹는 정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고, 누워 잘 수 있는 건 눕히는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전까지만 해도 아기가 졸린지 배고픈지 등을 나보다 엄마가 더 잘 알았는데, 이젠 남편도 엄마도 모르는 아기의 상태와 언어를 읽어낼 수 있었다. 기저귀 가는 건 순식간에 후딱 할 수 있고, 떨어뜨릴까 무섭던 똥 씻기는 것도 능숙해졌다. 혼자서는 절대 못 시키던 목욕도 혼자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어설프던 안는 자세는 이제 누가 봐도 애엄마 같이 안락해졌다. 아이를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랑 남편도 이제 ‘엄마’ 같다고 말하곤 했다.


무슨 일이든 3개월 간 꾸준히 하면 내 것이 된다는 3개월의 법칙은 육아에도 적용됐다. 나라고 처음부터 엄마였겠는가. 3개월 동안 ‘엄마’로 살다 보니 처음엔 어설퍼도 점차 엄마가 되어갔다. 그전까지는 그냥 양육 자였달까.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나는 이제 흔히 말하는 ‘엄마’가 되었다.


100일의 기적을 바랄 땐 그저 아이의 성장만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여자로만 살던 한 사람이 엄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100일이 아니었을까. 100일의 시간 동안 30여 년을 ‘여자’로 살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엄마라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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