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종은 Dec 28. 2020

분리불안은 엄마한테도 온다

아이를 두고 놀고 오는 건 상상도 못 한다

아이가 6개월이 되면서 분리불안이 시작됐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는데도 하루 종일 나만 찾는다. 넓은 거실에서도 꼭 내 옆에만 붙어있고, 내가 부엌에 좀 가려고 하면 열심히 기어 와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다.


화장실 갈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화장실 가는 나를 쳐다보고 열심히 따라 기어 온다. 혹여 문이라도 닫으면 비상벨이 울리듯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눈을 마주친 채 볼일을 볼 수밖에. 아이는 엄마와 마주 보고 앉으니 마냥 좋아 웃지만,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다.


일심동체가 되어 나와 떨어지면 우는 아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장난감 가지고 잘 놀고 난 옆에서 내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빤히 내가 어디 있는지 눈에 보이는데도 왜 이렇게 내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는지. 마음 한 구석에서 아이의 발달이 아쉬워진다.


하루는 엄마가 육아를 도와주러 오셔서 아이에게서 잠시 해방될 수 있었다. 해방이라고는 하지만 아이의 시야 사정거리 안에서 집안일을 좀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곳들을 정리하고 빨래며 설거지 등등 속 시원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계속 나를 찾는 듯 싶더니, 내가 바삐 다른 일을 하는 걸 보더니 할머니랑 이내 잘 놀았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아직 할머니와 잘 노는 아이를 보고는 욕심이 생겼다. 잠시 나갔다 올까? 망가진 핸드폰으로 계속 지내던 남편에게 생일선물로 새것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매번 시간을 못 냈었다. 혼자 다녀오라고 할까, 아님 내가 혼자 가서 사 올까, 그냥 셋이 같이 갈까 고민하니 엄마가 아이를 봐줄 테니 둘이서 다녀오라고 유혹했다. 마침 아이의 낮잠시간.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과 오랜만에 둘만의 외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불안한 영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매장은 바로 집 앞이고, 이미 어떤 걸 살지 정해둔 터라 길어도 30분 안에 일처리를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다림의 시간은 많은지. 직원이 전화를 하고, 또 일처리를 하다가 다른 손님에게 붙잡혀 응대를 하고.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직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아, 급한 거 아니면 우리 일처리 먼저 해주면 안 되나. 저 손님은 우리가 먼저 왔으니 기다리라고 하지 왜 다른 사람이 안 하고 저 직원이 계속 응대하는 거야.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지금쯤 아이가 깼으면 어쩌지. 깼을 때 내가 없는 걸 알면 엄청 울텐데. 우리 아기 숨넘어가게 울고 있는 거 아닐까.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생각이 닿았는지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기가 많이 우나?! 그런데 엄마는 태연하게 아직 아이가 자고 있으니 걱정 말고 천천히 일 보라고 하셨다. 휴~ 그래도 이번 낮잠은 좀 오래 자나 보구나.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약 한 시간쯤 흘렀을까. 드디어 새로운 핸드폰이 개통되었다. 이제 가자! 했더니 이번에는 이전 핸드폰에 있던 것들을 새 휴대전화로 옮겨준단다. 아, 이거까진 못 기다리겠다. 나는 남편을 두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초조한 마음에 발걸음은 어느새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울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 적막하다. 아직도 자고 있나? 집 앞으로 향해도 울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잘 자고 있나 보다 싶어 조심스레 현관문을 여는데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엄마가 아기와 함께 동요를 부르고 놀고 있었다. 아기가 깨있었어?! 아기를 보자 놀라면서 안심되고 미안한 복합적인 감정이 폭발했다. 알고 보니 아기는 깬 지 한참 됐고, 엄마가 나 걱정할까 봐 일부러 잔다고 했다고 한다. 다행히 울거나 엄마를 찾지 않아서 괜찮았다고 했다.


긴장했던 가슴은 아기를 꼭 안아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고작 한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불안한 건지. 아기가 분리불안이 생겼다고 투정 부리던 게 무안해졌다. 아기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구나. 나중에 복직 어떻게 하지... 복직하면 아기가 엄마 없다고 울 것만 걱정했었는데, 내가 불안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엄마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진정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웃었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알겠냐는 눈빛이다. 유치원 때 길을 잃어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가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을지 이해가 됐다. 빤히 집에 엄마랑 있는 거 알고 한 시간 집을 비웠을 뿐인데도 이렇게 불안하고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 하겠는데 당시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모유수유만 끊으면 자유부인이 되어 내 삶을 되찾을 줄 알았다. 친구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래서 아기에게 분유 좀 먹여보려고 노력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자유부인은 헛된 망상일 뿐이다. 어디 신경 쓰여 애 때 놓고 놀 수 있겠나. 쿨한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육아에서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이전 11화 엄마는 아파도 엄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