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독박 육아
가정주부는 당연히 직장생활보다 편할 거라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무의식 속 자리 잡은 이미지일까. 물론 가정주부가 집에서 하는 일이 많다고 이론적으론 알고 있었으나, 나도 모르는 사이 집안일을 하찮게 여겼었나 보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생각이 싹 바뀌었다. 내가 그동안 기자생활도 하고 국회 보좌진 생활을 하며 나름 거칠고 힘든 직장생활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이 훨씬 편하다. 특히 육아는 그 어떤 일보다도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야 한다.
독박 육아라고 하기엔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남편은 아기 깰 때 출근해서 아기 잘 때쯤 퇴근하니 독박 육아라면 독박 육아 중이다. 육아를 도와주시던 엄마는 아기를 보다 허리 디스크가 터졌고, 육아 도우미를 부르기엔 코로나가 께름칙했다. 혼자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쉴틈이 없다.
그런데 가만 보면 혼자 육아하는 게 구조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든다. 아니 어떻게 아이를 보며 집안일을 하는 거지? 남들 다 그렇게 고생했다는데, 이건 순전히 ‘엄마’를 ‘모성애’란 이름으로 갈아 넣어야만 가능한 구조 같았다. 옛날이야 대가족 시대였으니 가능했을 수도 있다. 집에 사람이 많으니 10분씩만 아기를 안아줘도 6명이면 한 시간이다. 업무로 따지자면 일의 양은 같은데 핵가족화로 인원이 준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과업무를 해야 일이 돌아가는 거고, 홀로 남은 그 일꾼이 바로 ‘엄마’인 것이다.
나는 홀로 아이를 보며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힘들었다. 살다 살다 내가 먹는 게 귀찮다는 말을 이해하는 날이 올 줄이야. 가끔 방송에서 입 짧은 연예인들이 음식은 그냥 생명연장을 위해 먹을 뿐 식욕이 없다고 하면 절대 공감할 수 없었는데. 먹는걸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내가 밥 먹는 것도 귀찮아졌다. 밥 차리고 치우는 것도 일이다. 그냥 안 먹고 쉬는 게 편했다. 그러다 보니 살이 결혼식날보다도 더 빠졌다. 넘쳐나던 모유도 점점 양이 줄었다. 그 때문인가, 아이가 또래보다 키는 컸는데 몸무게가 살짝 적었다. 병원에선 키가 커서 성장이 키로 간 거니까 괜찮다고 했지만, 애가 마른 거 같아 너무 신경 쓰였다.
결국 디스크로 누워계시던 엄마가 출동했다. 애 엄마가 굶으니 애까지 굶는다며 내 밥을 챙겨주러 오신 거다. 사실 분유를 먹이면 좋으련만, 곧 죽어도 분유는 안 먹겠다는 아기였기에 이유식과 모유로만 영양분을 챙겼다.
역시 엄마가 정답인가. 엄마는 밥 먹기 귀찮아하는 내게 꾸역꾸역 밥을 먹였고, 덕분에 빠르게 다시 몸무게를 회복했다. 그리고 역시 내가 잘 안 먹어서 젖량이 줄었던 건지 살이 찌니 젖량도 다시 차올랐다. 아이를 살찌우겠다는 일념 하에 수유 텀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배고픈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젖을 물렸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아기도 볼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엉덩이도 오동통해졌다.
엄마가 와주셔서 무슨 특별한 일을 하신 것도 아니다. 아직 허리가 회복되지 않은 터라 아이를 안는 것도 못 하신다. 그저 내가 화장실 갈 때나 밥 차리고 밥 먹을 때 아이가 이상한 거 입에 안 넣게 지켜보고 어디 넘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게 봐주시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만 누가 도와줘도 숨통이 트인다. 최소한 2인 1조가 되어야 한 명의 아기를 볼 수 있는 거다. 독박 육아를 하면 화장실 갈 때, 밥 먹을 때 아이를 혼자 둬야 하는 건데, 눈 깜빡할 사이에 사고 나는 게 어린 아기다. 아기 혼자 두고 뭘 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는 육아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남편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한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아기는 너무 사랑스러우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직장을 다녀야 하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엄마’라는 이름 붙은 둘이 고생 좀 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