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며 웃어보이던 아기의 슬픈 미소
유독 아이가 보채는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아이는 잠을 못 자서 하루 종일 칭얼거렸다. 졸리면 자면 될 것을. 밤에도 계속 깨서 잘 못 자더니, 낮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 했다. 보통 짧게 자도 30분씩은 자던 낮잠인데, 한 번 누우면 10분을 채 자지 못했다. 너무 안 자는 것 같아서 안아도 보고 젖을 물려보고 했는데도 실패. 잠이 안 와 안 잔다기엔 너무 칭얼거렸다.
문제는 아이가 잠을 자지 않으니 나도 못 잔다는 것. 아이와 함께 밤에 두세 시간씩 쪽잠을 자야 하는 나로선 낮잠이 필수였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낮잠 재우고 그 틈에 집안일을 한다는데, 나는 아이 낮잠 자는 시간에 같이 잤다.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짧게라도 자지 않으면 도저히 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가 낮잠을 안 자주니 죽을 맛이었다. 커피의 카페인이 절실했지만 수유를 해야 하니 그것도 힘들다. 그나마 카페인 성분이 적은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며 하루를 버텼다.
하루 종일 잠을 못 자던 아이는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늘 무슨 날 잡았나. 유난히 눕히면 깨고 눕히면 깨고를 반복해서 재우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긴 시간 끝에 드디어 아이는 잠들었고, 난 그제야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다. 남편한테 잘 자라는 말은 했던가. 모르겠다. 눈이 감긴다. 그때였다.
“유후~~!!”
밖에서 아기 장난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침대를 침범했다. 나는 뜨악하고 아기를 보는데 꿈틀꿈틀 깨어나고 있었다. 얼른 토닥토닥 재워봤지만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안아서 둥가 둥가 재우려 했는데 이제 울며 발버둥까지 친다. 달래다 달래다 짜증이 치밀어올랐고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거실로 나왔다.
“너가 재워!”
남편 옆에 아이를 내려놓고 가차 없이 뒤돌아 침대로 향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하다니. 폰으로 게임하면서 거실에 있던 장난감을 건든 게 분명하다.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 소리가 난 줄도 몰랐겠지.
“뭐 하는 거야! 아기 혼자 두고 가버리면 어떡해!”
남편은 화가 나서 따라왔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일단 난 다시 아이에게 향했다. 화가 났지만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남편 직장에 확진자가 나와서 남편은 코로나 검사를 받은 상황. 업무시간이 겹치지 않고 마주친 적 없는 직원이라 음성일 확률이 99%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본인은 아이를 안아줄 수 없는데 아이 혼자 두고 가버리면 어떡하냐는 거였다.
그때부터 말다툼이 시작됐다. 나는 안아주지도 달래지도 못할 거면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했고, 남편은 장난감을 건들지 않았고 저절로 소리 난 거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데 어느새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아이는 울지 않는 걸 넘어서 나를 향해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묘한 웃음. 이상하리만큼 과하게 웃고 있는 아기. 나를 살피며 자신의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자기 웃는 것 좀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자기의 울음이 싸움의 원인이 된걸 눈치채고 애써 웃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아빠의 싸움을 웃음으로 말리려는 것 같기도 하고. 큰 소리가 나면 겁을 먹거나 울먹이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되려 아이는 웃으며 내 표정을 살폈다.
아이의 웃음이 너무 슬펐다. 그게 뭐라고 이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눈치 보게 만들었을까.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싸우든 말든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 웃으며 눈치를 볼 줄이야.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아이에게 괜찮다고 웃어 보이며 꼭 안아줬다. 그리고 싸움을 멈추고 아이를 안심시키려 분위기를 풀었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말자고 약속했었는데 화가 난 순간을 참지 못했다. 아이도 아직 어려서 괜찮을 줄 알았다. 엄마 아빠가 이 작은 아이의 세상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할까. 그 둘이 싸운다는 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까. 아기도 다 안다. 다시는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한 걸음 또 부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