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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Feb 05. 2021

육아는 정성이 다가 아니다

이유식은 사 먹이기로 했습니다

내 육아 방침은 단순하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두기. 아직 어린 갓난아기이기에 무조건 아이의 요구를 다 받아주고 있다. 수면교육도 안 시키고 안아 재우고, 수유텀 따지지 않고 젖을 달라면 언제든 젖도 준다. 요즘 유행하는 엄마가 편한 육아와는 맞지 않는 그야말로 엄마를 갈아 넣는 육아다.


이유식 할 때가 되어서도 난 요즘 육아 말고 옛날 육아방식을 택했다. 주위에선 시판 이유식도 잘 나온다고 사 먹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만들어 먹이고 싶었다. 내가 직접 고른 재료로 비싼 것도 듬뿍듬뿍 아낌없이 넣는 이유식을 먹이고 싶었다. 제대로 만든다고 저울까지 사고 이것저것 다양한 이유식 도구들도 구비했다.


분유를 극렬히 거부하던 아기였기에 이유식을 먹을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잘 먹는다. 뭐 그렇다고 엄청 잘 먹는 아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안 먹지는 않았다. 나도 먹기 아까운 소고기는 아기 이유식에 듬뿍듬뿍 넣었다. 엄마 마음이 그렇다. 나는 대충 아무거나 먹으며 허기를 채워도 아기한테는 맛있고 좋은 음식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개월 수가 지나도 먹는 양이 늘지 않는다. 가끔 100ml를 먹긴 하는데 30~50ml 먹고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20ml밖에 안 먹는 날이 이어졌다. 중기 1단계 이유식을 먹이는 때였는데, 아무래도 입자가 조금 커져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 먹어서야. 이유식 말고 자꾸 젖만 찾는 아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젖량도 줄어서 젖만 먹으면 분명 배고플 텐데 이러다 살 빠지는 거 아닌가 심란해졌다.


하루는 아기와 산책을 하다 매서운 칼바람에 근처 백화점으로 피신을 갔다. 평일 오전이라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고, 온 김에 아기 옷이나 구경하려 했다. 그리고 마침 그 옆에 이유식 매장을 발견했다. 혹시 파는 건 좀 먹으려나 싶어 낱개로 하나만 사봤다. 아직 중기 이유식 1단계를 먹이는 중이었는데 입자가 조금 더 큰 중기 2단계 밖에 없어서 일단 그걸로 들고 왔다. 마음 한구석에는 ‘역시 시판 이유식도 안 먹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아기가 입을 쩍쩍 벌리며 이유식을 받아먹는다. 입자 크기가 커졌는데도 이렇게 잘 먹을 수가 없다. 그동안 이유식 안 먹는다고 걱정했는데, 설마 그동안 맛없어서 안 먹은 거니?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이렇게 민망할 수가. 내가 먹어봐도 내가 만든 이유식과는 비교가 안되게 맛있다. 풍미부터가 달랐다.


나름 맛있게 한다고 재료의 궁합도 따지고 고기 육수도 내고 했는데. 재료도 일일이 손질하고 정성도 그런 정성이 없었는데. 아직 맛있는 걸 많이 먹어보지 못한 아기라서 사실 건강식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먹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이 조그만 아기도 사람이라고 입맛이 있고 맛있는 걸 아는구나 싶다. 그동안 아기가 입자가 커져서 이유식을 안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내 문제였다니. 아기가 이유식 잘 안 먹는다고 동네방네 말하고 다녔는데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아이를 정성을 다 해 키우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잘하는 거다. 그래도 엄마의 정성이라는 부분에서 애착이 향상되니 플러스 점수를 줄 순 있겠지만, 일단 뭐든 잘하고 볼 일이다. 특히 육아에선 정성만으로 밀어붙이기엔 아기가 너무 고생할 수 있다.


이유식은 깔끔하게 사 먹이기로 했다. 어차피 궁극적인 목적은 아기에게 다양한 재료를 먹이고 잘 먹이는 거 아니겠는가. 내가 다 해주고 싶지만 아기가 엄마의 정성보다는 맛있는 시판을 선택했으니 서운해하지 않고 내려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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