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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Feb 13. 2021

밤수 끊기 도전기

밤이 오는게 두려워요

나는 수면 교육 같은 걸 시키지 않았다. 8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기는 안아서 재우고 밤에 깨서 울면 젖을 물리곤 했다. 밤에 젖을 먹는 버릇이 생기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배가 고파서 우는 듯한 아기를 보면 젖을 안 물릴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8개월의 시간 동안 5시간 이상을 연달아 잔 적이 없다. 아니 사실 5시간 동안 잔 건 손에 꼽을 정도고 보통 2~3시간마다 깨서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당연히 수면시간은 부족했고 나는 점점 말라갔다.


젖 주는 게 달래는 것보다 편하긴 했다. 밤에 울 때 젖을 물리면 쉽게 다시 잠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하루는 한 시간마다 깨서 우는데 정말 수면 고문이 따로 없었다. 신생아 때로 돌아간 듯한 수면의 질. 모유를 먹이니 분유 먹이는 아기들처럼 통잠 자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렇게 날밤을 새고 다음날 천방지축으로 움직이는 아기를 따라다녀야 하다니. 아이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겠다는 각오가 무뎌졌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밤에 젖을 먹이는 밤수를 끊기로 결심했다. 아예 젖을 끊는 극단적 방법도 생각했으나 그렇게까지 모질진 못했다. 하지만 밤에 깨서 젖을 먹는 잠버릇은 단단히 고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정말 배고파서 깨는 거였다면 한 시간마다 깼을 리 없다. 그리고 그렇게 밤새 젖을 먹었으면 아침에 내 젖이 그렇게 남아있을 리 없었다. 결국 그동안 아기는 그저 밤새 내 젖을 물고 싶었을 뿐이라는 결론이 났다. 마침 설 연휴가 다가왔고 난 이때를 놓치면 안 될 거라 생각했다. 밤샌 아이와의 전투를 치르고 전사하면 낮엔 남편이 아기를 봐주기로 했다.


밤수를 끊기 위한 첫째 날. 12시쯤 처음 잠에서 깬 아기는 다짜고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재빠르게 젖을 물려 다시 재우면 되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그럴 수 없지. 나는 아기가 잘 때 듣는 자장가를 틀고 아이를 안아 둥가 둥가 재우기 시작했다. 아기는 예상했던 젖을 주지 않자 격렬하게 저항했다. 몸을 뒤로 뻗대며 더욱 크게 울었고 울음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비명처럼 변해갔다. ‘혹시 정말 배가 고픈 건 아닐까?’ 난 괜히 애를 굶기는 거 아닌가 싶어서 지금이라도 젖을 물려야 하나 갈등했다.


아이의 울음에 마음은 점점 약해졌고, 이러다 애 잡겠다 싶어 그냥 내가 고생하고 아기에게 젖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점점 줄어드는 울음소리. 어라, 이러다 자겠는데 싶었다. 조금 더 재워볼까 싶어 열심히 음악에 맞춰 인간 바운서가 되었다. 그리고 이내 힘없이 툭 떨어지는 아기의 팔. 잔다. 드디어 잔다. 나는 조심스레 아기를 눕히고 살짝 설렜다. 이대로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 아기는 밤에 한두 번 깨고 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랬으면 그냥 젖 몇 번 물리고 계속 재웠을 거다. 나는 밤수 끊기 도전 첫째 날 두 시간에 한 번씩 아이와 전쟁을 치렀다. 우는 아기를 보며 마음이 약해졌고, 마지막으로 젖을 먹은 지 5시간이 넘어가서는 진짜 배고플 텐데 라는 생각에 거의 젖을 물릴뻔했다. 하지만 정 배가 고프면 깨겠지 싶어서 ‘깨면 젖을 물린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가며 버텼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나자 아기는 완전히 눈을 떴다. 정확히는 이제 눈을 뜨고 울었다. ‘이건 진짜 배고픔이다.’ 그제야 나는 젖을 물렸고, 정신없이 젖을 먹고 난 아기는 행복한 듯 ‘후~’라는 감탄사와 함께 젖을 놓았다.


둘째 날은 나름 자신감이 붙었다. 첫째 날 8시간을 성공했으니 일단 8시간 동안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아기가 잠잘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경기가 임박한 운동선수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도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가 깼을 때 많이 울기 전에 빨리 안아 재워야 한다는 나름의 팁도 생겼다. 이번에도 12시 즈음이 되자 아이의 첫 번째 울음이 터졌다. 역시나 안아서 다시 재우려 하자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이번엔 어제보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젖을 먹일까 라는 나약한 마음 따위도 접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달래다 보니 아이는 다시 잠들었고, 밤새 몇 번 달래고 나니 8시간쯤 뒤에 아기는 눈을 떴다. 인터넷에선 8개월 정도 된 아기는 밤에 젖을 먹지 않고 9~10시간은 버틸 수 있다고 하던데 우리 아기는 8시간 정도인가 보다. 아직 새벽 5시였지만 난 무리해서 다시 재우지 않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셋째 날은 이제 그냥 좀 자려나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에 따르면 밤수를 끊은 아기들은 통잠을 잔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의 수면을 위해서라도 밤수를 끊어야 한다는 말들도 많다. 하지만 역시 아이는 다 다르다. 우리 아기는 젖을 안 먹을 뿐 통잠을 자는 스타일은 또 아니었나 보다. 이날은 2시까지 깨지 않길래 나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그때부터 정확히 한 시간마다 깨는 아기. 한 시간마다 깨서 젖을 찾길래 시작된 밤수 끊기였는데, 한 시간마다 깨서 다시 재워야 하는 일이 발생하다니. 아니 이럴 거면 그냥 젖을 물리는 게 편하지 왜 이런 고생을 하겠는가. 아직 밤수를 끊는 버릇이 안 들어서 그런 건가. 그래도 이제 밤에 젖을 안 주는 걸 알았는지 깨더라도 젖을 찾는 건 좀 준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밤을 지새워야 할까.


이렇게 밤새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난 다음날 완전 넉다운이 된다. 그런데 이제 설 연휴도 끝나고 남편의 출근이 시작된다. 그전에 아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난 밤새 아기와 씨름하고 또 다음날 홀로 아기를 봐야 한다. 과연 나는 그 체력전을 버틸 수 있을까. 이러다 다시 젖을 물려버리진 않을까.


옆에서 아기가 곤히 잠들었다. 오늘은 또 몇 시에 깨려나. 오늘은 몇 번이나 깨려나. 오늘은 또 얼마나 울려나. 당분간 밤이 오는 게 두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고통의 끝에 통잠이라는 기적이 오길 바라며 버텨본다. 육아는 체력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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