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로 인해 멈춰있던 시간이 달려간다
육아를 하니 시간 가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매일매일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었는데, 아이 크는 걸 보니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분명 신생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지. 남의 아이는 빨리 큰다고 하던데, 내 아이는 더 빨리 크는 것 같다.
시간이 눈에 보인다는 건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음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준다. 노래방에서 아직 부를 노래가 많이 남았는데 10분 남았다고 알려주는 기분이랄까. 언제 이렇게 시간을 많이 썼지 싶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난 여전히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또 하루하루 미루고 있었을 거다. 매년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워놓고 실패하고, 내년을 기약하곤 했는데. 이렇게 미루기만 하다가는 내 평생 아무것도 남지 않겠구나 싶다.
한편으론 아기가 저렇게 큰 변화를 이뤄낼 동안 대체 난 뭘 했지 싶다. 나도 마음만은 하루하루 성장하고 싶은데, 이 핑계 저 핑계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흘러가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 사이 아이는 조용히 폭풍성장을 하고 있다. 근육의 움직임을 정교화시켜서 손도 제법 쓰게 되었고, 5개월이 되면서 떼구루루 하루 종일 굴러다니고 있다. 가만히 누워있던 삶에서의 탈출이다.
부모님은 가끔 딸인 나보다 아기를 더 보고 싶어 하며 서운해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나야 한 달 전이나 일 년 전이나 지금과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매일매일 굳이 보지 않아도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기는 아니다. 어제의 아기가 다르고 오늘의 아기가 다르다. 어쩜 이렇게 하루하루 성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 변화를 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그러다 문득 부모님을 보면 숙연해진다. 우리 엄마는 언제 할머니가 다 된 거지. 아빠는 참 안 늙는 사람이었는데 우리 아빠도 이제 주름이 많네. 너무 조금씩 매일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부모님의 시간도 멈춰있다고 착각한 것 같다. 멈춰있던 시간이 아이의 등장으로 쌩하니 달려가고 있다.
사실 시간이 흐르는 건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아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에 안 보이면 없는 줄 아는 꿩처럼 수풀에 머리만 쏙 숨기고 시간이 멈췄다고 안심하는 꼴이다. 아이의 등장으로 빠른 시간의 흐름이 가시화됐다.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시간들이 이렇게 아까워질 수 없다. 앞으로라도 조금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싶어 졌다. 지금에서라도 시간의 카운트다운을 보여준 아이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