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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yong Julie Sim Mar 02. 2017

퇴사와 연애의 알싸한 관계

스물아홉 여자, 첫 퇴사로 되돌아본 이별의 민낯들

#1. 나의 익숙한 '퇴사     


“저 다음 달까지만 나오.... 고 싶어요.”

말이 튀어나오는 찰나, 문득 ‘나올게요’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맺음말일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급히 말을 바꿨다.


퇴사 선언! 

'가슴속에 사표 한 장쯤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얼마나 바라는 순간이던가! 나도 이 순간의 짜릿함과 통쾌함을 어렴풋이 상상하면서 무수히 많은 고비들을 견뎌내곤 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설레발치며 상상해왔던 것에 비해 현실에서는 정작 첫마디 하나 제대로 꺼내기도 쉽지 않았다. 첫 연인과 이별할 때 뭐라고 말하면 좋은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처럼, 첫 회사에서 첫 퇴사를 할 때 어떤 단어부터 꺼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퇴사 좀 해 봤다는 그 누구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애초에 이런 애매한 순간들에는 ‘적당한 단어’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과장님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깊은 한숨만 쉬더니 입을 열었다.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네... 어떤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회사에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럼 다른 회사로 옮기니?”

“아닙니다. 제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에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인 것 같아서요.” 


퇴사를 이별에 빗대 말하는 걸 심심찮게 들어왔는데, 직접 퇴사를 선언하고 나서야 그 비유의 적절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 이유가 뭐야?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오빠 때문이 아니야. 그냥 내 문제야.’ 

‘다른 남자가 더 좋아졌구나...’ 

‘그런 거 아니라구...’


뭣도 모르던 열몇 살 시절, 첫 연인과 처음으로 '연애'란 걸 하고 또 처음으로 '이별'이란 걸 했을 때, 그 민망하고, 불편하고, 미안하면서, 아프기도 하고, 또 조금은 후련하기도, 허무하기도 했던 그때의 대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것이 날 행복하게 했든 슬프게 했든 진절머리 나게 했든, 한동안 지속되었던 관계를 끊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2. 퇴사처음으로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려고 하는 그 일, 조금만 더 늦게 하면 안 되는 거니? 계획을 좀 미뤄주면 안 돼?”

“계획을 조정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힘들었던 부분이 있으면 말해 봐. 업무적인 거라면 업무를 조정하면 되고, 업무 외적인 거라면 같이 바꿔 나가면 되지 않겠어? 속 시원히 말해 봐.”

“...”

“일주일만, 아니, 이번 주말만이라도 한 번만 더 생각해 봐 줄래? 간곡히 부탁한다.”


그랬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것은 퇴사 첫마디를 꺼냈을 때의 통쾌함이 아니라, 갑과 을의 기류가 처음으로 바뀌는 바로 이 순간의 카타르시스였을지도 모른다.     


연애에서는 더 좋아하고 더 절실한 쪽이 자연스레 ‘을’을 자처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란 곳에서는 무조건 급 높은 사람들은 ‘갑’, 급 낮은 사람들은 ‘슈퍼 을’이 된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업무 보고를 할 때도, 퇴근을 할 때도, 내가 아플 때도, 내가 한 말이 사실 맞았을 때도... 

회사생활 내내 결코 한 순간도 뒤집어지는 일 없던 그 수직 관계. 

그 ‘철밥통’ 같은 관계가 유일하게 역전되는 때가 바로 이 순간 이리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군림했던 '갑'이 처음으로 자진해 터벅터벅 내려와,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위치한 내게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란 걸 하는 순간.     

그건 퇴사 선언 후 수 차례의 면담 및 회유를 거쳐 실제로 사표를 내기 직전까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바로 그 기간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사치 아닌 사치였다.          


#3. '갑자기'란 무심한 폭력     


"갑자기 이렇게 퇴사 얘기를 꺼내니 당황스럽네. 잘 다니고 있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란 단어를 툭 꺼내는 팀장님의 모습에서는 '뭣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여전히 뭣도 몰랐던 스물몇 살 시절'의 이별이 떠올랐다.       


*

그 시절 만났던 연인은 선하고 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내게 기꺼이 눈을 떼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고, 나도 그를 위해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영화처럼 서로에게 눈을 떼 줘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진정성을 입증할 길은 없을 터이나, '믿어 의심치 않았다'라는 표현은 결코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 정도로 그때의 나는 넘치도록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쪽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권리와 의무를 제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고,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고했다.


견고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관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난 후, 내가 믿었던 모든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왜? 갑자기, 왜?' 

나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자문하고, 절규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서서히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혼자서 끌고 있었던 무거운 밧줄 위에 맺혀 있던 핏방울들을. 

그는 몇 번쯤 멈춰서, 자신의 피맺힌 손바닥을 내 얼굴 앞에 들어 보였으리라. 나는 무심히 고개를 돌렸으리라. 그는 하는 수 없이 계속 묵묵히 혼자 밧줄을 끌고 걸어갔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 한 걸음도, 더는 한 걸음도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날, 그는 피투성이 손바닥을 펴 밧줄을 툭, 놓아버렸으리라.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순간들이 존재했을 뿐, 결코 갑작스러운 건 없었다.   

   

나는 끔찍하게 긴 시간 동안 끔찍하게 혹독한 벌을 받으면서, 내 몫의 밧줄을 외면한 죗값을 톡톡히 치렀다. '모든 관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클리셰한 교훈은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었다. 나는 그 슬픈 선물을 정성스레 풀었다. 


그 후로 나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과의 관계든,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관계에 있어서는 앞장서서 온 힘을 다 바쳐 밧줄을 끄는 쪽을 택했다.
그럴 자신이 없는 관계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

회사가 쌀을 주면 쌀을 받았고, 똥을 주면 똥을 받았다. 업무가 과중하면 ‘짧은 시간에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네’라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대표하는 상사들이 그 법칙의 지당함을 찰지게 입증하는 말을 툭툭 내뱉고 가면 ‘사회생활이란 걸 퍽 다양하게 경험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웃프게'라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일했다.      


“회사에서 아픈 놈은 죄인이야.”

“사회생활이란 건 말이야, 업무에 대한 열정보다 상사 비위 맞추는 게 더 중요한 거야”

“그래도 이런 걸 남자 직원한테 시키기는 좀 그렇잖아, 안 그래?”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들도 그저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나는 내 몫의 밧줄을 끄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저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날리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좋은 상사들이었다.)   


적어도 스스로 세운 기준에 있어서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죄책감도, 두려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갑자기'란 말은 폭력이었다. 
선홍색 핏빛을 외면했던 쪽에서 뒤늦게 내뱉는 무심한 폭력.          


#4. '종말의 후유증' 견고하게 견뎌내기


나의 첫 퇴사는 과거 이별의 얼굴들 몇 개를 떠올리게 한 뒤에야 비로소 완전한 종말을 맞이했다.     


‘관계의 종말’은 이를 통보하는 쪽에게도, 통보받는 쪽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느 노래 가사처럼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는’ 우리네 삶에서, 크고 작은 관계의 종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리라. 인생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될 ‘종말의 후유증’을 조금이라도 더 견고하게 견뎌 내는 방법은 진부하지만 결국 한 가지가 아닐까?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지. 너도 완벽하지 않아. 네가 만난 그 여자도 완벽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영화 <굿윌헌팅> 중-     


비록 지극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이지만,

내가 속한 관계 속 찰나의 순간순간에는 온 마음을 다하겠노라고, 

오늘도 나는 또 쉽지 않은 다짐을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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