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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May 30.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아무튼 우리는 괜찮지?”

석탄·목재상 빌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시내에 산다. 펄롱은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딸들에, 따뜻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는 상황에 감사한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자신은 운이 좋았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났다.”(p22) 실업 수당을 받으려는 줄이 점점 길어지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추운 집에서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펄롱은 마음 한편이 공연히 긴장될 때가 많았다. 왜인지는 몰랐다.”(p22)


삶은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p29)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을, 내일이 저물 때도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사소한 풍경을 마주할 때면 마치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불현듯 떠오르는 궁금증과 다르지 않았다.


펄롱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펄롱은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다. 펄롱은 아픈 과거에 머물기보다 예쁜 딸들을 부양하는 데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펄롱의 잠재의식은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했다. 펄롱은 어려운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그것은 어린 펄롱을 향한 연민이었다.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삶에 큰 변화를 주는 목소리들은 자기가 아주 특별하니 챙겨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하루 시간 속에 무심히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 인생에서 존재 목적에 도움이 되고 풍요와 의미를 가져다주는 여러 중요한 것은 대체로 우리의 시간을 강경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소하다.


펄롱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준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펄롱은 바쁜 엄마 대신 자신을 키워준 미시즈 윌슨을 생각한다.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p120) 작가 클레이 키건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소하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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