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티엔 드 라 보에시 / 생각정원
<자발적 복종>은 프랑스혁명이나 아나키즘, 시민불복종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저작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서적임에는 분명하다. 그 이유는 당시의 정서에 비춰볼 때 이 저작이 다시 지배층에게 기득권을 해할 수 있는 위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정 시대에 복종에 대한 이유를 고찰하고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를 든 것만으로도 그것은 엄청난 모험일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을 고찰해 보면, 당시 지배층들에게는 분명 불온한 서적이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런 저작으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싹 틀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겠지만,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투쟁없이는 이 책을 읽는 것조차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을만큼 위험부담을 가져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발적 복종>은 시민들을 선동하는 구호다. 다수의 민중이 소수의 권력자에게 복종할 수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에 항거하고, 진정한 주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굴종의 관습에서 벗어나 세상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눈을 뜨고 독재 권력을 지탱하게 만드는 우민화 정책에 반기를 들라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근본이념인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평등하다는 기치 아래 자유로운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라는 호소이자 절규인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놀라운 악습인 복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자유의 가치를 설파한다. 독재자의 유형을 나열한다. 굴종의 관습을 깨부수고 지배공식을 통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체제에서 막연히 주입된 공포에 머물러 있지 말고 깨어나라고 역설한다. 왕정시대가 마감되었다고 해서 자발적 복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피로사회>의 저자가 한병철 교수가 설파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교묘하게 가려진 수법을 통해 대다수의 시민들을 자발적 복종으로 몰고 가는데 일조했다. 신과 종교의 가치를 뛰어넘어 하나의 우상이 되어버린 자본이 그 요체다. 자본주의 체제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소비 성향을 개선하는 것이 유일한 항거일 수 있지만 이미 물들어 버린 시스템을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망령된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미래 세대들이 고민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자발적 복종>은 몽테뉴와 라 보에시가 우정의 관계가 없었다면 세상에 빛을 보기 힘들었던 저작이다. 조국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격정적이고 통렬한 논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자유의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또한 자발적 복종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주력을 기른다면 라 보에시의 외침이 결코 헛되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