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 해냄출판사
베스트셀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작가로도 널리 알려진 김누리 교수는 중앙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 독일유럽학과 교수이다. 최근까지 전국의 초·중·고, 대학, 각종 기관을 대상으로 수많은 강연을 진행하며 교육 문제의 심각성과 교육혁명의 필요성을 알리려 애써왔다. 이런 교육에 대한 남다른 선구안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 책은 우리 사회 저변에 암약하고 있는 부조리에 대한 해부학 교과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통렬한 비판과 해석으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사회학 필독서로서도 그 가치를 점유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의미심장한 문구를 만나게 된다.
불행한 우리 아이들을 살리기 위하여
교육의 근본은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인데 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의 불행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개략적으로 우리 교육의 심각성에 대한 저자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저자는 들어가는 말 초입에 위와 같은 소제목을 붙이고,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신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르몽드》의 기사를 소개한다.
‘한국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
‘한국의 교육은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
한국 학생들의 현주소와 그 원인을 명징하게 드러내 주는 두 줄의 문장은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교육에 대한 인식에 일침을 놓는다. 무엇보다도 ‘야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제하에 우리 사회의 실체를 까발리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 또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면서 그 누구도 사실은 그 용어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할 것처럼 여겨지는 용어에 대해 명철한 해석을 가한다.
이처럼 지배적인 잘못된 생각을 ‘이데올로기’라고 합니다. 조금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데올로기란 ‘특정 사회나 집단에서 지배적인 잘못된 관념체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경쟁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잘못된 관념체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야만의 트라이앵글’로 경쟁-능력주의-공정에 대해 언급한다.
경쟁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유례없는 위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경쟁 이데올로기를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떠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의 ‘결과’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고, 경쟁의 ‘과정’은 공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합리화됩니다.
이런 ‘야만의 트라이앵글’이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면서 경쟁교육으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적인 병폐 현상을 저자는 최근 우리 교육이 길러낸 ‘최고의 엘리트들’이 보여준 행태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의료 파업을 일삼는 의사들, 사법 농단을 저지른 고위 판사들에 대한 무죄 판결로 일관하는 판사들, 고위 검찰 간부들에 대한 ‘봐주기 수사’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검사들의 행동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경쟁교육에 최적화된 인재들이 결국은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보다는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이런 현상은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던지게 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런 약탈적 자본주의, 천박한 천민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불행에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은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악의 불평등’.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 ‘지옥 같은 사회’가 ‘야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사회 구조 속에서 필연적인 결과임을 도식화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런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 학생들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저자는 역설적으로 여러 가지 질문으로 이에 대해 답한다.
우리 ‘사회의 영혼’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그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있나요
그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들이 개성을 기르고 자유를 누리도록 무엇을 돕고 있나요
그들이 세계의 고통과 억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연대하는 세계시민으로 자라도록 이끌고 있나요
그들이 정의와 평등의 감수성을 갖도록 교육하고 있나요
요컨대 우리는 아이들을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 개성적인 자유인으로 기르고 있나요
과연 이런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는 이처럼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독자에게 묵직한 과제성 사유를 던진다.
1부 교육다운 교육을 한 적 없는 나라
2부 야만의 트라이앵글_왜 대한민국은 붕괴하는가
3부 한국 교육,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4부 교육혁명, 학생·교사·학부모가 주체여야 한다
5부 대한민국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통해 야만화 된 경쟁 교육의 실체를 까발리며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한 해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해법보다는 1부의 제목 ‘교육다운 교육을 한 적 없는 나라’라는 문구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나름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근대교육이 시작된 일제 강점기의 황국 신민 교육, 독재 개발시대의 반공 투사와 산업 전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 민주 정부 이후 인적 자원을 만드는 교육 속에서 ‘교육다운 교육을 한 적이 없는 나라’라는 문구는 그대로 완성된다.
- 인간을 지배하는 자본의 언어
- 교실에서부터 시작되는 불행
- 한국엘리트가 보여주는 미성숙과 오만
- 아이들의 잠재력을 죽이다
- 자아를 짓밟는 우열 교육
- 컴퓨터가 채점하는 대학입학시험
- 극단적 경쟁이 초래한 폭력문화
- 자본의 노예, 재벌 권력의 하수인
- 사립대학의 왕국, 살인적인 등록금
1부 소제목으로 언급되는 위와 같은 문구만 보더라도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교육의 폐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으로 사유의 가치를 일깨우는 저작이다. 흔히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한다. 독재자 히틀러의 수하인 아이히만이 사유하지 않고 그저 공직자로서 하달된 명령을 충실히 실행했던 이유로 수백만의 유태인이 학살되었듯이 우리의 교육 또한 제대로 된 방향은 설정하지 않고, 속도에만 열을 올리며 폭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시점이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는 우리 교육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여태껏 우리가 간과해 왔던 경쟁교육의 폐해를 진단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교육과 관련된 생각들이 저자의 타당성 있는 근거 제시와 논리적 귀결로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예기치 못했던 수확이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교육의 실상을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현학적이지 않은 문체로 교육 현상을 풀어내는 명철한 해석 덕분에 가능했다. 책 뒤표지의 문구를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하는 문장들을 보면 저자가 왜 그토록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극단적 경쟁의 학벌계급사회에서 사활을 건 전쟁터가 돼버린 우리의 교실
학습 노동에 지친 학생과 교권 침해에 시달리는 교사들
끝없는 열등감과 불안으로 모두가 불행한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