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 천년의상상
저자는 진중권 교수는 현재 광운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미학과를 졸업한 이유 때문인지 그가 지은, 미와 예술을 다룬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발간 20주년 기념 판을 본 적이 있는데, 소장하고 싶은 충동이 이는 저작이다.
<생각의 지도> 또한 그에 필적할 만한 책이다. 단지 이 책은 미학보다는 부제처럼 ‘철학에세이’를 표방한다. 그렇더라도 책을 보면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책 자체가 한 편의 예술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미학적으로 뛰어나다. 책 표지는 물론 삽화는 그 자체로서 예술적인 향취에 젖게 만든다.
예술은 아무래도 향유하는 층이 적다. 그래서 예술은 종종 소수특권층에 한정되는 이미지를 주기 쉽다. 그런 면에서 철학 또한 식자층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철학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나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그렇다. 책장을 넘기면 온통 생경한 단어, 개념들뿐이다. 아무리 철학에세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책이 어렵다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건 전적으로 책을 고른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해되지 않는 책을 무작정 읽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기왕 책장을 넘긴 것이라 읽기는 읽었지만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정체성을 드러나는 문구가 책날개에 있다.
“여기에 묶인 글들은 논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필도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논문과 수필을 뒤섞어 놓은, 아주 특정한 의미에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인정한 것처럼 이 책은 그리 쉬운 형태의 책은 아니다. 논문과 수필을 뒤섞어 놓은 것이라면, 그것도 철학적인 내용을 그렇게 엮어놓은 것이라면 일반인들이 읽고 소화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이 저작이 ‘낯설게 하기’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그런 만큼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은 흔히 보던 자기 계발 서적처럼 중언부언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소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 하더라도 생경한 지식을 통해 탐구정신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텍스트인 것은 맞다. 인문학 서적의 한계이기도 한데 그런 낯섦을 통해 학문적인 관심에 귀 기울이고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 될 수 있다.
사회 문제에 날 선 비판을 한 저자를 언론에서 자주 대면하곤 한다. 그런 저자의 인식의 근저에는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 미학적인 감수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이 획일적인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자유롭게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 문제가 있으면 이를 공론화시키고 하는 일들은 지식인들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때론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문제적인 발언으로 이슈의 정점에 오르는 일도 많지만 저자의 이런 모습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렇기에 <생각의 지도> 또한 지금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어렵지만 다시금 한 번 읽어보고 그 의미를 새길 이유가 생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다양하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 연관 없이 쓰인 파편적 글들을 내용의 유사성과 연관성에 따라’ 묶은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을 잡고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책이다. 그렇지만 개별 주제에 따라 접근해 보면 동서고금을 망라한 다양한 소재를 기저로 하여 생각의 사유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유용한 책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