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 인플루엔셜

by 정작가


‘당신의 죽음이 존엄하길 원한다면 먼저 삶이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이 책은 존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존엄의 가치를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저자는 ‘내면의 나침반’으로서 존엄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일깨워준다. 존엄에 대한 정의는 본문에 들어가면 명징하게 드러난다.


존엄은 내면에 확신으로 깊게 뿌리 박혀 한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부여하며 그 고유의 인간됨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드는 관념이다.


이런 존엄에 대한 정의는 핵심 명제인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는 속성으로 귀결된다.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노신사와 함께했던 일화는 잡초 또한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런 존재론적 인식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 속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은 존엄의 가치를 향해가는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던 병원은 이제 이익극대화라는 함정에 빠져있고, 이윤추구라는 미명하에 산업시설처럼 변해가고 있다. 이런 상징적인 곳에서조차 자본주의적인 논리가 판을 치는 형국이라면 다른 곳에서는 그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환경단체들은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선포하며 인류가 처한 위기를 알리려고 하지만 세계는 오로지 경제변화와 성장에만 몰두하고 있다. 효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시장의 변화 또한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의 가치를 재삼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지속적으로 끊임없는 발전을 추구하고 있지만 과연 그 끝은 없을까 고민해 보아야 할 때는 아닐까? 그런 현상이 우리의 존엄을 위협한다고 하면 말이다.


독일어의 ‘알티어부르딕’은 ‘오래되다’라는 의미에 ‘존엄하다’는 뜻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오래된 존귀한 존엄은 단어의 뜻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중요한 가치로 그 위치를 점유하지 못했다. ‘존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언급한 로마의 국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를 꼽지만 그 오래전부터 개념화된 ‘존엄’이라는 가치가 정작 인류에게 근접한 형태로 다가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만큼 존엄의 가치는 인류에게 있어서는 생경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인간 존엄 역사에 그나마 혁명적인 사명을 안고 태어난 이가 있기는 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예수라는 존재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예수가 탄생한 이후 세상은 그리스도교적 믿음이 충만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이 시기는 인류의 변화와 발전이 도태되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걱정하기는커녕 생존의 문제조차도 해결할 수 없었던 적이 많았던 시기였다. 중세에는 개개인의 인격적인 가치보다는 신앙을 중시하는 시대사적인 흐름 때문에 오히려 인간존엄이 짓밟혔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오로지 지상과제는 신의 대한 순종뿐이었고, 그로 인해 현세에서의 삶의 질을 걱정하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했다.


이런 시대를 거쳐 인간 중심의 시각이 확산되기 시작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은 무조건적인 신의 대한 복종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인간의 위치를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고민했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존엄에 관한 무조건적인 명령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통해 가능해졌다. 칸트는 인격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규정했다. 이후에도 인간의 존엄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프리드리히 폰 실러와 같은 시인에 의해서 인간의 존엄은 ‘숭고한 심정의 표현’ 등으로 정의되었다. 이렇듯 인간에게 존엄의 역사는 오랜 세월동안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가치임에도 선뜻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정의되지 못한 채 방랑의 시간을 거쳐 왔다.


이제 존엄의 가치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궁극의 가치로 인식되지만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흘려보내야 했었나 생각해 본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존엄의 가치를 결코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존엄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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