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감독(1987) / 미국
영화의 첫 장면은 부대에 입소하는 훈련병들의 삭발식으로 시작된다. 뭉텅뭉텅 깎여져 잘려나간 머리는 기존의 사회에서 살았던 방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다. 하트먼 상사는 해병대 신병교육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지휘관이다. 그의 이미지는 마치 서부텍사스의 카우보이를 연상케 한다. 반듯한 이미지, 얼굴을 바싹 대고 내뱉는 가공할 욕지거리들. 신병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몸서리를 친다. 신병들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쓰레기, 올챙이 새끼, 구더기 일뿐이다. 하지만 몇 주간의 훈련이 지나면 살인 병기로 거듭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고문관인 로렌스는 진짜 쓰레기며 구더기일 뿐이다. 실수투성이 로렌스는 군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트먼 상사로부터 갖은 모욕과 조롱을 받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소위 왕따로 전락한다. 늘 웃는 표정이었던 그가 독을 품은 독사의 눈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군대라는 환경이 한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의문을 던진다. 그런 의문은 하트먼 상사에 대한 살인과 자신의 자살로서 그 해답을 드러낸다.
전장은 폐허로 변해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폭격 맞은 건물, 건물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와 화염의 흔적들, 채 꺼지지 않은 불꽃들. 전장이 주는 폐허와 공포 속에서 탱크를 앞세우고, 한 소대원들은 진군을 한다. 갑작스러운 폭발, 향방을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날아드는 저격수의 총탄은 대원들의 숨통을 조여 온다. 전장이 주는 공포다. 예측할 수 없는 저격수의 총탄은 베트남전쟁의 향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듯하다. 몇 명의 대원을 목숨을 앗아간 저격수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 저격수가 조그만 베트콩 소녀였다는 것은 대원들을 당황하게 한다. 건장한 군인들 몇 명과 베트콩 소녀의 대면은 미국과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들은 진군한다. 연막탄을 피워 올린 듯 뿌연 안갯속을 진군한다. 드러나지 않는 전쟁의 진실 속에서 무작정 진군할 수밖에 없는 운명. 그런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들은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살인기계로 거듭나고 변해간다. 전쟁은 삶을 황폐화시키고, 따뜻한 영혼을 차갑게 변화시킨다. 한 인간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전장에 배치되어 살인기계로 둔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호송 헬리콥터에서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살인한 베트콩의 수를 자랑스럽게 들먹이는 장면은 전쟁이 인간을 살인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도 모자라 죄책감마저 상실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행위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트먼 상사의 욕지거리가 한 인간을 살인자로 만든 것처럼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살인자로 만드는 거대한 욕지거리의 산물이다. 이런 비극의 원천은 사랑의 결핍과 저급한 욕망에 있다.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고, 욕망에 초연해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