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 부키

by 정작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를 학위를 취득하고 당시 동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장하준 교수의 저작이다.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100쇄를 넘긴 베스트셀러이다. 한때 국방부에서 군인들의 금서로 묶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인 것을 보면 그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한 가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장하준 교수가 원서로 쓴 저작을 두 명의 역자가 번역한 것이다. 어떤 저서이길래 한국 사람이 영어로 쓴 저작을 다시 역으로 번역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이런 경우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중량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여기서 좀 더 발전된 의미의 자본주의를 지향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요즘 세계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얽히다 보니 도처에서 음모론이 속출한다. 인터넷은 음모론의 진원지이다. 이런 음모론은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더욱 실감 난다. 물론 이런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한 진위를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 하긴 주변국인 중국조차도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이웃나라인 일본조차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판에 과연 어떤 것이 거짓이고 진실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런 다큐멘터리의 진위를 따지는 것도 사실은 무의미한 것인지 모른다. 그저 한 번 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또한 장하준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므로 수긍할 것은 수긍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계정세, 특히 경제의 흐름에 대한 인식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기존의 알고 있던 상식이 무참히 깨지는 느낌은 '시대정신'을 볼 때의 느낌처럼 짜릿하기까지 하다. 물론 단 번에 술술 넘어갈 만큼 쉬운 책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을 하며 읽다 보면 그나마 알고 있는 진실이 전부는 아니구나 하는 각성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우리가 배우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통념들을 단번에 엎어버린다. 오죽하면 국내 경제학자들이 연합하여 이 책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이 책에는 23가지 사안에 대해 세계를 움직이는 숨은 세력들, 즉 다수의 기득권세력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진실이 아닌, 철저히 계산되고 일부만의 이익을 위해 유포되어 대부분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안들을 수많은 증거자료와 예시를 통해 반박하고, 좀 더 나은 자본주의를 향한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다. 이 중에서 특히 두 가지 명제는 주목할만하다.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에서는 각각 세계화를 명목으로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음모와 요즘 우리 경제 상황과 밀접한 부자 감세로 인한 정책에 대한 폐해를 지적한다.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문화의 교류를 통해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열린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은 어떤가?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후진국들은 알짜배기 공기업을 헐값에 넘기고, 거대 자본으로 잠식된 자국의 경제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더욱더 빈곤하고 곤궁한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의 수탈이나 최근 이라크 전쟁이 석유의 확보를 둘러싼 강대국의 음모로 기획된 전쟁이라고 한다면 자유 시장 정책이 결코 공정한 거래를 통해 상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비록 다윗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지만 현실의 세계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좋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에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부자감세로 대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면, 남은 파이는 국가에서 원하는 대로 민생경제로 넘어갈 줄 알았지만 그저 대기업의 배만 불려놓은 꼴이 되었다. 그들은 결코 고용이나 투자를 통해 국가경제를 일으킬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당과 스톡옵션 등으로 집안 잔치만 할 뿐이고, 마치 회사의 성장이 자신들만의 노력과 역량에 의해 이루진 것이라는 착각만 할 뿐이다.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욕을 먹으면서 시행한 부자감세 정책이 결국 정부에 부메랑이 되어 엄청난 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대기업을 압박하지만 잔치는 끝났고, 이미 버스는 출발한 뒤라는 것을 애통해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듯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준다. 물론 이 책에 대한 비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100% 옳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이 책을 읽을 수 있고, 인터넷에 널린 기사나 가십거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과연 기존의 통념을 비판한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한 내용이 결코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나아가 비중 있는 언론사의 주장보다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주장이 오히려 신빙성이 있고,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그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지칭 한다. 정확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힘들을 비호하고, 그들을 위해 자유 시장 경제학을 주창하는 경제학자들이지만 이들 또한 '그들'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진실을 함구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펼쳐 '그들'에게 돌아갈 파이만 챙기려 한다. 그들은 대다수가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소수만이 우위를 점유하고 그런 지위를 지속적으로 누리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특권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끊임없이 이론을 만들고, 영향력 있는 언론을 포섭하여 그들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신대륙의 발견'이 결코 신대륙의 발견이 아닌 침략과 학살로 점철된 서양사관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이몽학이 썩어빠진 조정을 뒤엎고 새로운 세상의 왕을 꿈꾸듯이, 그들도 결국 정의의 이름으로 그들의 반대파를 축출하지만 결국 누가 파이를 점유하느냐의 차이일 뿐 그들 또한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뿐이다. 그들이 결코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그 자리를 공고히 한다고 해서 결코 그것이 인류의 공동적인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사유의 틀 속에서 사고와 세상을 보는 시야는 확장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기존의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폐해를 지적하고, 인류의 보고인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는 불공정한 음모에 대해 비판한다. 각자 출발점이 다른 인류의 구성원들이 행복하려면 이런 소수 특권층의 행태와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 인류 모두가 공존하고 공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사고의 틀을 넓히고,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이 인류가 좀 더 발전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게 된다. 장하준 교수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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