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 문학과 지성사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한다. 시장의 자율성은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변이적인 과정을 거치며, 고용의 보장은 유연화란 이름으로 부정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전심전력으로, 성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일한다. 자발적인 안간힘, 이것은 우리가 경쟁 사회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을 함축하여 표현한 문구인지도 모른다.
<피로사회>의 저자는 말한다. 우울증 같은 신경증적 질병은 병리학적으로 타자의 부정성을 기반으로 한 면역학적 패러다임의 도식을 벗어나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라고. 이는 병원, 감옥, 병영 등으로 상징되는 푸코의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귀결로 규정지어질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 책은 서두가 이런 식이다. 책의 전반에 걸친 현학적인 용어들은 한두 번 읽는다고 해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한 ‘깊은 심심함’에서 한나 아렌트의 《활동하는 삶》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가치를 두고 파고드는 철학적인 고찰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저자가 주창하는 피로사회에 대한 핵심을 파악한다는 것조차 사실 무리수다. 그렇더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들어가 보면 대략적으로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치가 어떤 식으로 전복되는지 충격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긍정성의 부정이다. 무한긍정, 즉 긍정의 과잉은 무능력자에게 있어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포탄과 같다. 긍정의 에너지가 부정적인 마인드를 일소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상황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긍정의 과잉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냉소, 불안, 우울증이라는 형태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전처럼 면역학적 도식에 따른 이분법적인 구분은 비록 그것이 규율이라는 강제성에 바탕을 둔 경계성에 천착하게 되는 우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갈등의 상태를 지속화시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은 자의적이고 자기 주체적이며 자기 검열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결국은 자기 분열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 결말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피로사회를 그저 세상살이의 단면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책의 저자인 한병철 교수는 국내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건너가 철학, 문학, 신학 등 다양한 형태의 학문을 전공한 학자답게 <피로사회>를 통해 독일 사회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무수한 철학자를 배출한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여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만 보더라도 이 책의 난해함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어려움은 난해한 용어와 개념의 몰이해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이렇듯 저자의 범상치 않는 역량을 읽어낼 수 없는 이중고의 부담을 안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피로사회>는 그 자체만으로는 1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이다. 저자의 제안에 따라 「우울사회」라는 강연 원고를 첨부한 것으로도 고작 100페이지를 약간 넘길 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도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표현이 적확하다고 할 만큼 난해함에 허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아직 이런 책들을 읽기엔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라고 할지라도 행복지수에서는 많이 뒤처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과연 그런 이유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던 것 또한 이런 종류의 책을 읽게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성과주의가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그런 영향으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불안함과 초조감속에서 피로하게 살 수밖에 없는지 고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의미를 이해하기가 아직은 버거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더라도 책의 뒤표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단’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피로사회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해석을 통해 우리의 위치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명저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