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H. 프랭크, 필립 쿡 / 웅진지식하우스
한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온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와 똑같은 제목의 책도 시중에 나와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1등에 대한, 즉 승자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큰 것도 사실이다.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촉발한 스테벤 에셀의 <분노하라> 또한 경제 분야의 승자, 즉 소수의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자본의 폭력에 대해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승자를 위주로 한 사회 구조는 다수의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고, 더욱더 경쟁을 부채질하도록 만들 뿐이다. 여기에 이런 사회 구조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한 한 권의 책이 있다. 바로 <승자독식사회>이다.
이 책은 1995년에 출간된 책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막 나타나고 있는 미국의 승자독식 현상을 다룬 것이다. 그럼 20년 전에 출간된 책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새로 번역되고 뜨거운 이슈메이커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 또한 그런 승자독식사회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하여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승자독식구조를 살펴보고 그에 따른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칼 세이건, 제라르 드파르디유, 조지 소로스, 스티븐 호킹, 마이클 조던, 존 그리샴, 아놀드 슈워제네거, 앤드류로이드 웨버. 이들의 공통점은 각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일인자에 오른 사람들이다.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자리를 탈환(?)한 사람들도 있을 터이지만 누구도 이들의 존재감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승자들의 세계에 길들여져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독점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렇듯 승자만을 우위에 둔다면 그 위치에 오르지 못하는 절대다수는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승자독식사회의 원천은 승자독식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장의 메커니즘이 절대적인 능력이 아닌 상대적인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절대적인 능력차에 의해 보상이 결정되는 노동시장은 나름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승자독식시장에서는 미소한 차이가 엄청난 보상을 담보하기에 소득불평등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그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승자독식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분야로 학벌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학벌이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승자독식시장에서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소위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학벌을 소유한 사람은 승자독식사회에서 쉽게 승자가 될 수 있다.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청춘 시절을 공부에 할애하는 것도 이런 학벌시장의 승자가 되고, 나아가 승자독식사회의 승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승자가 되기 위한 관문은 좁다. 그런 이유로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한 접근이 요구되는 데 그중의 하나가 돈, 자본의 힘이다. 자본의 힘은 승자가 되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구축해 준다. 이런 연결고리는 부익부빈익빈을 고착화시키고,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렇다면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풍토조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승자독식사회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자본과 학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이를 보상하는 기제를 사회적으로 일정 부분 통제하여 자정의 기능을 거친다면 과열된 경쟁사회에서 수많은 낙오자들을 양산하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은 대폭적으로 수정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경쟁을 방지하는 사회규범들’은 이에 합당한 대안을 제시한다. 지위군비경쟁을 지위군축협정으로 대체하고 법률과 공공정책을 통한 규제방안을 승자독식시장에 적용한다면 그에 따른 승자독식사회의 모순도 차츰 줄게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조세정책이다. 예를 들어, 누진소득세를 엄격히 적용하게 되면 승자독식시장에 몰려드는 현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또한 의료개혁이나 교육혜택의 확대를 통해 사회적으로 승자의 위치와 간극을 좁히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의미 있는 담합, 즉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과열경쟁의 장을 축소시키고 조금 덜 일하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사회 풍토를 조성한다면 승자독식적인 관점을 탈피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문화 회복의 관점에서는 소비자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의 증가를 역설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오로지 승자만을 위한 사회다. 승자는 소수다. 그 진입장벽도 이전보다 두터워졌다. 이런 사회에서 부익부빈익빈은 더욱더 고착화된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처럼 승자독식사회를 약화시키기 위한 대안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차단하고 경쟁풍토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 승자들의 입지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했던 이들은 상위 1%만이 승자로 자리매김한 왜곡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일침을 가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 또한 승자독식사회에서 소수로 재편된 사회 구조를 개혁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승자독식사회>는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지위군비경쟁, 소득 불평등, 다수가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모순을 승자독식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해 합당한 제안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승자만이 주목받는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내재된 문제점을 짚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