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이 장에서도 여전히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간을 견지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범주는 발레, 서커스, 오페라, 오페레타, 전람회, 회화, 음악회, 출판 등 당시 유행하던 예술의 종류를 총망라한 것이다. 이런 예술을 유지하기 위해 수천 또는 수만의 사람들이 긴장된 노동에 동원된다는 시각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선구안적인 혜안을 담고 있다.
당대의 예술 활동은 현재와는 여러모로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그 가치를 단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글을 통해 지금보다 더 큰 비중으로 노동자의 조력을 필요로 했었다는 사실은 직감할 수 있다. 특히 예술 행위를 위해서 부자에게서 보수를 받거나 정보보조금이 예술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하게 투입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런 국가의 예산이 대부분의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이 소수 권력층을 위한 사유물로서 자리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이런 예술의 생성 과정에서 나타난 비주류층의 희생을 그리스 · 로마 시대라면 노예가 존재했던 시기라 인정할 수도 있을 터이지만 당대(톨스토이가 살았던 시절)에 그런 관행이 여과 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예술의 가치를 그리 높이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다. 예술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고 규정할 때, 예술로 인해 인간의 노력과 생명을 희생시키고, 급기야 윤리와 도덕까지 파괴할 지경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인간에게 존재하느니만 못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톨스토이가 바라보는 예술에 대한 감각은 그것이 단순히 아름답다는 미학적 가치만이 아니라 그런 가치를 구현해 내는 인간에 대한 윤리나 도덕적 검증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방식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또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편적인 층위에서 머무르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예술 장르에 복무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역할까지 확대하여 이미 그 범위를 확장시켰던 인식 상황을 목도하게 되면, 과연 톨스토이가 왜 예술가나 사상가로서 칭송을 받는지 그 가치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이런 평가의 배경에는 이미 그가 르낭의 저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크랄릭 교수의 《세계미, 일반미학시론》, 귀요의 저서 《현대 미학의 제문제》와 같은 미학 이론을 섭렵했던 이유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로 이런 저서를 탐독하지 않은 이들이 발레나 오페레타에 나오는 배우들을 꾸미거나 지원하기 위한 행위, 이를테면 미용, 의상, 이발, 재봉, 요리 등을 폄하하는 것은 이런 사상적 세례를 미리 접하지 못한 미숙함으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크랄릭 교수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다섯 가지 예술에 대해 언급한다.
그 다섯 가지 예술이란 미각예술 · 후각예술 · 촉각예술 · 청각예술 · 시각예술을 말한다.
미각예술, 후각예술이라고 당연히 요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요리는 혀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맛을 보고, 코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냄새를 맡기 때문이다. 또한 촉각을 요리를 만지는 감각으로 형해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예술의 개념이 미(美)의 표현이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라는 톨스토이의 인식에 공감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공감각적인 인식으로서 예술을 보통 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평가하는 이면에는 단순히 ‘예술 = 미’라는 등식으로 치환하는 일반인들의 단선적 평가 방식을 지적하는 이유도 자리하고 있다. 또한 1750년 바움가르텐이 미학을 창시한 이후로 미에 대한 규정이 150년 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결국 수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노력에도 불과하고 명쾌한 언어적 정의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美)라는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본질이 단편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무수한 의미장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美)라는 의미 속에 내재된 본질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적 의미에만 천착할 것이 아니라 각국의 언어를 토대로 미의 학설을 찾아보고 연구하여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이를 규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러한 방식의 대안으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는다.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현대 미학자들 사이에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는 미의 정의를 일부 발췌해 보겠다.’
이렇게 말하고 독일의 미학자 샤슬러의 미학서 서문을 소개한다. 샤슬러의 《비판적 미학사》의 서문을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 내용 또한 명료함보다는 절충적인 특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설명이 많은 것은 그만큼 구체성을 띄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베롱의 《미학》을 인용한 대목은 그런 모호성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무릇 모든 학문 중에서 미학만큼 형이상학자의 공상에 맡겨진 것도 없다.
이런 인식의 토대는 그동안 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미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 과정에서 그 의미나 가치가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화해 왔던 이유가 크다. 톨스토이가 비교적 최신의 사례만을 이 장에 소개하게 된 것은 고대의 미에 대한 인식이 선(善)과 미(美)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미학의 정의보다는 의미의 모호성을 띠어 등시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 간의 미의 해석에 대한 구분을 위해 톨스토이는 베르나르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과 발터의 《고대미학사》읽기를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