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2000) / 대한민국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에 대한 추억은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아마도 순수한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박하사탕>의 명대사로 자리매김한 '나 다시 돌아갈래'는 그런 순수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세상은 순수한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공유하기엔 너무 척박한 불모지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세파에 찌든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더께처럼 쌓여가는 삶에 대한 진저리가 아닐까. 그럼에도 과거를 추억하고, 순수한 시절의 추억을 음미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기 위한 지난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때론 상처가 아픈 가슴을 후벼 팔지언정.
<박하사탕>은 시간이 흐를수록 순수한 시절로 회귀하고픈 많은 사람들의 로망을 제대로 표현해 낸 수작이다. 그 속에는 사랑도 있고, 시대의 아픔도 있다. 또한 주변 환경에 천착하여 아파하는 영혼의 울부짖음도 있다. 순수의 가치가 훼손되어 가는 상황을 목도하며 아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어찌 보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물이라는 속성을 간과한 채 아픔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법구경에서도 인간이 불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첫 번째의 깨달음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순수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삶이란 워낙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 대한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순수함과 이기심의 양 날개를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운명은 손아귀에서 머물 수도 있고, 영향력을 벗어나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변 환경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나의 운명이 될 것이고, 그것을 거부한다면 내 운명과는 상관없는 무의미한 것이 될 뿐이다. 결국 주위의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인 셈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과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과연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는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한다면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고, 주인공처럼 끊임없는 고통과 복수, 아픔에 천착한다면 운명 또한 그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위의 환경이 아니라 나의 의지라는 사실이다.
<박하사탕>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첫사랑, 순수, 소박함, 상처, 고통, 아픔, 죽음 등. 이 또한 우리가 삶에서 예외 없이 거쳐갈 수밖에 없는 감정의 편린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 속에서 우리의 삶은 무르익어가고 때론 해체되어 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선택만이 유일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주인공의 죽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세상이 제시하는 잣대를 거 부하 고자는 의지가 아닐까. 비록 박하사탕을 먹었던 순수한 시절로 회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더욱 애달프고 아프지만 그 또한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할 때 죽음은 바로 곁에서 손짓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면 주인공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하사탕>의 구성은 이채롭다. 시간을 되돌아가는 여정은 기찻길과 그 주변의 풍경들을 마치 꿈결의 한 장면처럼 흡인하는 마력이 있다.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마치 기차가 달리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결국 현실은 과거의 연장일 뿐이다. 우리에겐 늘 현재만 존재하지만 관념적으로는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미래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지의 시간을 상정한 것이라면 과거는 그래도 우리의 기억 속의 한 부분, 아니 기억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에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살펴보고, 지나온 삶을 관조할 수 있다면 삶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을 가속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