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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r 01. 2019

삶으로 기억하기 위해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삶으로 기억하기 위해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3.1 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향한 곳은 영화관. 반드시 오늘은 이 영화를 보리라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조조상영 시간대와 비슷한 영화관에는 역시나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또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 영화를 오늘에 선택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지금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가 이것밖에 없어서 일수도 있고, 상영 중인 다른 영화는 이미 봐서 일수도 있고, 무작정 아무 영화나 보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중요한 건 오늘 나는 모르는 여러 사람들과 영화 <항거>를 함께 나눴다는 것이다.



<항거>는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옥중 투쟁을 담은 영화이다. 중간중간 감옥에 가기 전 유관순의 이야기를 넣지만 모든 전개는 옥중에서 펼쳐진다. 지금의 우리가 유관순을 기억할 때면 보통 3.1 운동이나 출소 이틀을 앞두고 옥사했다는 아픈 사실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 역시 위 두 가지 사실로 유관순을 기억했고, <항거> 역시 이러한 사실들에 집중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번 <항거>에서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의 인터뷰를 확인했다.



"죽음보다 삶으로 기억되는 인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 한 줄을 읽고 사실 별다른 의무감을 느끼지 못했던 <항거> 관람에 대해 의무감을 가졌다.



그렇게 나는 유관순을 죽음보다 삶으로 기억하기 위해 <항거>를 봤다. 애국심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이럴 때만 불타오르는 형태 없는 애국심으로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다. <항거>는 조국을 위한 희생과 고통이 뭉뚱그려 강조되기보단 "그럼 누가 합니까"라는 질문으로, 견딜 만큼의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그리하여 살아 숨 쉬는 의지로 비롯된 개인의 삶들을 그린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대를 뒤집어쓴 채 도착한 곳은 좁은 방. 여옥실 8호실이다. 임산부, 노인을 제외한 청년들은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좁은 방. 그들은 다리가 붓지 않기 위해 그곳을 빙빙 돈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왜 잡혀 온건지도 세세히 알 수 없지만 '아리랑'으로, 몸으로 소통하며 연대한다. 목소리의 울림은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진동하기 시작하여 차갑고 두꺼운 벽을 뚫는다. 울림은 더 큰 울림이 되어 허황되고 악착스러운 명령은 초라한 침묵이다.


영화는 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진행되는데 그 상황들은 주인공 유관순으로 비롯된 것이기도, 또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관순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선택을 조용히 따라간다. 유관순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항거>의 유관순은 영웅이라는 이상적 캐릭터가 아닌 삶을 살았던 개인이기 때문이다. 차별과 차이가 없는 세상을 위해 만세를 외친 것이라고 동료를 위로하지만 자신이 옳은 일을 했던 걸까 괴로워하며 이내 눈물을 흘린다.


*개인적으로 고아성 배우의 연기가 매우 감탄스러웠던 장면이었다. 향화(김새벽)와 옥이(정하담)의 사이에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다부지게 눈물을 닦아낸 얼굴에는 '그럼에도 하겠다'는 의지의 외침이 가득해서. 유관순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꼭 이런 표정을 지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따스한 햇빛이 온몸을 감쌌더라면 아쉬움이 덜 했을까.


꺼지지 않는 자유를 가득 담은 눈으로 생을 마감하는 유관순을 담으며 영화는 끝이 났고, 나는 아쉽다고 말했던 향화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유관순과 여옥수들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깨달았다. <항거>가 전해주는 감정들을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그렇게 유관순을,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그 시대를 100년이 지난 오늘 '삶'으로서 말이다.


경건함과 애도를 가득 담아 아쉬움을 표하며 나는 <항거>를 기억할 것이다.


여성 주연, 여성 조연, 여성 독립 운동가들. <항거>는 분명히 여성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자가 감히 만세를 외치냐는 조롱에 삶 자체로 대답한 유관순과 여옥수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그들의 속삭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효하기 때문에 <항거>가 영화로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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