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22화
혹시 일기를 쓰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매년 그 해에 맞는 다이어리를 구입해서, 개인 신상에 대한 잡다한 일을 적기는 하지만, 일기는 아닙니다.
매 번 일기를 써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를 꾸준히 잘 해내지 못하기에, 이렇게 브런치에나마 '정기적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기라는 것은 누구나 학교를 다녀본 분들이라면, 써보지 않은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일기는 그 시절 참으로 귀찮은 것이었고, 끈질김과 정직함을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정기적으로 제 생각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기억이 납니다. 뒤에서부터 일기장을 걷어서, 선생님께 제출하고, 며칠 지나면, 선생님의 '빨간' 코멘트가 담긴, 일기장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글을 잘 쓰던 못 쓰던, 글자를 적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지 일기장을 채워야 했습니다.
문제는 방학 기간인데, 방학에는 일기를 매일 쓰기가 참 힘듭니다. 방학, 말 그대로 배움을 놓는 기간이 아닙니까, 배움을 놓으면, 일기도 놓아야지요. (웃음) 그렇게 일기를 놓고 개학하기 하루 전, 저는 좀 자각을 빨리하는 타입이라 개학 일주일 전 즘, 기억을 되살려서 일기를 '재구성' 했습니다. 매일 쓸만한 일이 있지는 않기에, 하루에 재밌는 일이 두 개 생기면 쪼개어서 이틀 치를 썼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누구나 짐작했듯이, '날씨'였습니다.
일기 시작할 때, 날짜를 적고, 날씨를 적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 폰을 열어서 언제 날씨를 검색하면 어떠했다고 나오겠지만, 그때는 날씨를 미리 어딘가에 적어 놓지 않으면, 몇 월 몇 일 날씨가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었고, 날짜와 날씨가 맞지 않으면, 일기가 밀렸다는 사실을 들키기 마련이었습니다.
이렇게 학창 시절 일기를 쓰는 행위는, 우리에게 꾸준함, 정직함, 그리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을 때의 순기능을 직접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깨달은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하는 것, 그리고 제 자신을 반성하는 법 또한 일기를 쓰는 행위의 교육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여배우도 최근 인터뷰에서 감사한 일들을 적는 일을 5년 정도 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기를 쓰면서 해 보았던 작업일 것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음력으로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이 밝습니다. 긴 뱀의 몸뚱이처럼, 올 한 해는 일기를 쓸 때 배운 것처럼, 무언가를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브런치북이 끝나도, 또 꾸준히 글의 장르를 바꾸어서 '장편'으로 시작하는 무언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일기를 썼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시고, 여러분들께서도 올해는 꾸준히 무언가에 몰두해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그렇게 되시기를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한 반에 50명 가까운 학생들의 일기를 꼼꼼히 읽어주시고, 빨간 색연필로 성의 있게 멘트를 달아주셨던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내 일기를 누군가 본다는 것이 '인권 침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일기를 선생님이 보시고, 이건 참 잘했구나, 이건 좀 아쉽구나 하고,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좋겠다 싶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기가 힘든 요즘은, 선생님의 빨간 글씨가 참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