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호 Nov 05. 2024

상길이가 자른 고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10화

의 사회생활은 직장 생활이 대부분입니다. 대학을 다니는 것도 학생 신분이라고 본다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단순히 성적을 높이기 위한 단순한 노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가정을 이루며, 아이까지 양육해야 하는 등, 제가 정의하는 '찐' 사회생활은 학교 생활보다는 입체적이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학교 생활에서는 우리말의 반말을 비교적 편안하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선배나 선생님, 교수님들께는 당연히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후배나 친구들에게는, '편하게' 반말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은 마음 또한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있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 편안한 '말'을 사용하며, 사회생활을 할 때보다 긴장을 풀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직장을 중국에서 시작하다 보니, 한국어를 사용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2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 바로 이직을 경험하, 몇 개의 직장에서 새로 배우는 입장에 있다 보니, 회사에서 만나거나, 회사를 통해 만나는 그 누구에게도 쉽게 '말'을 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로 만난 사이, 일로 지속되어야 하는 관계이다 보니, 말을 편하게 하는 순간 우리 관계가 선을 넘거나, 상치 못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저보다 어리다고 해도, 경력이 적다고 해도, 직급이 낮다고 해도, 좀처럼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며, 직급을 붙여주거나, '님'자를 불러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렇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또 이유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양반 두 사람이 지나다가, 백정에게 고기를 사가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한 양반은 "박서방, 고기 한 근만 주게나. ", 다른 양반은 "상길아, 고기 한 근만 다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 물론 여기서 고기가 한 근인지 두 근인 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그랬더니, 백정이 두 양반에게 양이 다른 고기를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박서방'이라고, 백정을 불렀던 양반에게는 큼지막한 고기를 었고, 두 번째 '상길'이라고, 이름으로 백정을 불렀던, 양반에게는 작은 덩어리의 고기를 건네주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양반이 화가 나서, 아니 왜 내 고기는 이렇게 양이 적냐고 따지자, 백정이 말했답니다. 저 고기는 박서방이 잘라둬서 풍성하게 되었고, 이 고기는 상길이가 잘라서 덩어리가 작았다고, 이죠.


직장에서 아무리 제가 직급이 높아지고 나이가 많아지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이름을 '누구야'라고 부르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회사에서 회사의 일을 하기 의해, 각 직급을 부여받고, 그 직급만큼의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여기에 김 주임, 이 과장, 알렉스 님, 철수 님이 아닌, '영희야, ' '민수야'로 부른다면, 여기가 학교인지, 동아리 방인지, 영희에게 민수에게 회사 일을 어떻게 하자고 말을 할 수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또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회사 밖에서 만나면 이름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지만, 우리가 회사 밖에서 만날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게다가, 회사 밖에서, 이 팀장인 저를 만나면, 우리 동료 직원들이 좋아할까요?라는 부분은 미지수입니다. - 제가 악명 높은 동료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 얼굴을 주말에도 보는 순간, 우리 동료들은 제가 부탁했던 일들을 떠올리겠죠? 그렇게 온전히 쉬어야 할 귀중한 시간을 제가 망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백정이 박서방이라고 이야기한 양반에게 본분을 다해 고기를 잘라준 것처럼, 저 또한, 직급이나 존칭을 다해 호칭해 준 동료들이 제게도 훌륭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전 직장 동료 분들과도, 호칭 정도만 변하고, 말을 편하게 나누는 분들이 많지가 않네요.


제가 너무 빡빡한 사람인 것 같, 빡빡하게 구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 그러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무실에서는 정말로, 동료 분들 이름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이즘 되면, 제 성격대로,

살아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웃음)




사실, 지난주 퇴사하신 직장 동료 분과 카톡을 나누었습니다


동료분 : "퇴사했으니, 편하게 오빠라고 부를게요."

저: " ㅎㅎㅎ", (여전히 쉽게 '네'를 말하지 못함)


퇴사 후, 편하게 불러주고 다가와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서방하고도, 상길이 말고, 상길'씨' 하고 부르면서 친해질 수 있겠죠?  선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 생각하는 제게 이 험한 사회에서, 형, 동생, 오빠 하자고 먼저 이야기해 주는 분들과, 또 저 자신도 그렇게 부르고 싶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09화 물 먹은 별이 반짝, "아름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