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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호 Oct 29. 2024

물 먹은 별이 반짝, "아름답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9화

문득 퇴근하는 버스에 무거운 몸을 싣고, 매일 보던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버스 안의 온도와 버스 밖의 온도 차이로 인해 유리창에는 자연스럽게 뽀얗게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투명하지 않은 우유 빛깔 창너머 반짝이는 저녁거리의 별빛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학창 시절 언젠가 이 아름다움을 아련하고, 애처로이 표현한 시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한참 동안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아, 정지용 시인이었다. 간신히 시인이 누군지는 기억이 났으나, 그 단어 물 먹은 별(?) 뭔가 '물먹은'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포털에 입력을 해보았고, 시 제목이 '유리창'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 거린다. "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


유리창이 아마 당시 상황을 봐서는 화자가 기차 안에서 밖을 보는 듯 보이는데, 차창 너머 공기의 온도와 움직임을 '차고 슬픈 것이 어른 거린다고, ' 차창 너머 움직이는 풍경을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그리고 유리창을 닦으면서, 창에 맺힌 물방울을 닦을 때마다, 뽀얗던 창밖의 어둠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 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는 이 글과 시인의 재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 차창에 끼어있는 물방울 너머로 보이는 빛을 물먹은 별이라고, 보석이라고

풀어놓은 이 대목에서 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분명 쌀쌀한 계절 밤에 수많은 '물먹은 별이 반짝이는 풍경'을 차를 타면서 보아 왔지만, 이러한 언어를 구사하여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인이 종이에 뿌려 놓은 언어를 따라 읽는 것이, 직접 보는 차창의 풍경들보다 더 입체적이고, 그림처럼 가왔습니다.


문학 교과서에서 이 시를 접한 지 20여 년이 넘게 지난 금에서야, 시험 문제와 그 답을 찾으려는 시선을 벗어던지고, 유리창이라 시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결핵으로 아이를 잃었던 시인의 마음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 것도 같습니다.


같은 풍경,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어떠한 의미를 찾고, 정서를 입혀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재능을 가진 분들에게 큰 부러움을 느낍니다. 저에게도, 그런 재능, 아니 그렇게 표현하고자, 그런 재능을 발굴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시를 머리로 배웠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라도 배워서, 가끔 익숙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이 나이에도, 시에 대한 기억이 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그 시들이 기억이 날 정도로 어린 내가 공부를 열심히는 했구나 하는 마음에 피식 미소가 지어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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