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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키워낸 집사 #4 나오짱의 치남매들

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by 벨롱님
아이를 낳아보니 나오짱에게 미안함이 배가되었습니다. 지난날 나의 행동을 반성했지요.

'나오짱의 옆에 남편이 있고 네 마리의 치남매들을 함께 키웠다면'
그리고 '온전하게 나오짱의 3인가족을 만들어줬다면'
그랬다면 '페코와도 잘 지내지 않았을까'

나오짱은 그걸 바랬을 수도 있습니다. 가끔씩 우리 셋의 다른 결말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나오짱의 치남매들 … 멸치갈치꽁치삼치


나오짱은 점점 배가 불러왔고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초음파를 찍으면 새끼가 몇 마리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언제쯤 출산 예정일인지, 집에서 낳을 경우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담당 선생님께 조언을 듣고 집으로 왔다.


밤마다 나쁜 꿈을 꿨다.

'나오짱이 새끼를 낳았는데 고양이 꼬리가 잘려 있으면 어쩌지?'

'새끼를 낳다가 나오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지만 제일 큰 걱정은 '내가 출근했을 때 혼자 낳으면 어쩌지?'였다.


보호자 언니는 이런 불안함으로 나오짱의 출산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2월의 마지막 날 퇴근 후 소개팅이란 걸 하게 되었는데, 밤에 집에 와보니 나오짱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불안해졌다. 고양이는 혼자 출산 상자 안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 그날이구나! 늦어서 미안해 오짱아
혼자 무서웠을 텐데 언니가 옆에 있어줄게.


평소 좋아하던 박스가 출산 장소가 되었다


나는 먼저 나오짱을 위해 미역국을 끓였다. 산모를 위해 미역국에 사료를 말아주기 위한 특별식 같은 거였다. 내 옆에서 혼자 끙 하더니 새끼를 낳았다. 아가냥을 핥으면 나는 조심히 꺼내 꼬리부터 확인했다. 사람이 아기를 낳으면 손가락 발가락 먼저 세어보는 거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순서가 헷갈리지 않게 색실로 새끼 목에 묶어줬다. 12시부터 한 시간마다 진통이 왔고 건강한 아기고양이 4마리를 낳았다.


샴 새끼들은 새하얀 생쥐 같았다. 포인트 컬러는 커가면서 짙어지는 걸 몰랐던 거다. 성별과 상관없이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멸치, 갈치, 꽁치, 삼치 이렇게 1남3녀가 2005년 3월 1일 새벽에 태어났다. 직장 다니는 언니가 늦잠 잘 수 있게 출산날도 공휴일로 배려해준 나오짱에게 고맙고 또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미니홈피에도 아가사진이 이렇게도 없다니 ㅠㅠ



아빠 모르게 태어난 아이들 … 미혼묘


그렇게 나오짱은 남편이 아닌 주인언니 옆에서 출산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그 녀석이 나오짱의 동의없이(?) 강제로 임신시켰다고 괘씸히 여기고 있었다. 그 보호자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서로의 근황을 묻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가 버렸다. 새끼를 낳고 나서 이제서라도 연락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으나 결국 나는 모른 척 지나쳐버렸다.


출산을 하고 나서 나오짱은 어미묘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4마리의 치남매들을 아끼고 돌보고 가르쳤다. 나오짱의 쳐진 뱃살을 보며, 사료도 영양제도 우유도 간식도 모두 새끼들 먼저 챙기는 나오짱을 보며 나에게 이상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편애 없이 똑같이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새끼들보다 나오짱을 편애했다. 모든 걸 먼저 주었지만 나오짱 마음은 새끼들에게 향해 있었다. 치남매 중에서는 엄마 닮은 아이를 더 예뻐했다. '예쁘다'는 말도, 행동도 노골적으로 한 걸 보면 '공평한' '똑같은' 사랑은 나에게 어려운 말인 듯했다. 어쩌면 둘째아이를 낳기가 두려운 건 나의 편파적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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