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생이 키워낸 집사 #2 먼지, 나오짱이 되다

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by 벨롱님
"남자들은 고양이 키우는 여자 싫어해”
“너 고양이 키우면 결혼 못 한다!”

2003년 26살이었던 미혼의 직장여성이 시집 대신 고양이를 키우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정말 시집 못 가나 싶기도 했는데 지금 호적 같이 쓰는 사람이 있으니 그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나 봅니다. 고양이가 결혼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그때, ‘나도 고양이 있어’를 선택한 건 그의 관심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나마에와


먼지를 주변에 자랑하고 나서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TV에서 샴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 일본식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생각하다 일본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메신저로 부탁을 했다. 아기고양이 사진을 전송하며 여자아이에게 어울리는 일본 이름을 찾아달라고 했다. 며칠 뒤 일본에서 여자 고양이에게 주는 이름으로 나오짱, 미미짱, 하나짱 등이 있다고 알려줬다. 집에 돌아와 먼지를 보며 하나씩 이름을 불러봤다.


나오짱(なおちゃん) 어때? 넌 이제 나오짱이야!


히라가나 찾아가며 더듬더듬 쓴 나오짱 이름


고양이가 메꾼 마음의 구멍


일본 영화 중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라고 있는데, 나름 카모메식당, 안경 등으로 내 또래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오짱에게 이름을 지어주던 그때가 떠올랐다. 외롭거나 힘든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주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인데, 고양이를 빌려간 사람들의 마음의 구멍은 고양이로 메워지고 행복해진다는 스토리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출처: 다음 영화)


당시 고양이 이름을 부탁한 친구는 내가 좋아하던 이였다. 그 사람의 관심을 얻기 위해, 안부 연락을 받기 위해, 메신저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일부러 부탁한 것. 하지만 그러면서 생기는 내 마음의 구멍을 모른 체 했다. 그 고양이 이름을 찾아준 사람은 그 친구가 좋아하던 일본인 여자 친구였으니까. 내가 고양이에 대해 얘기할수록, 이름을 물어볼수록, 그는 더 열심히 그녀와 얘기를 나눴을 테니 ……


나는 영화에서처럼 사요코에게 빌려오듯 고양이를 데려왔고, 오랜 일방향의 관계 속에서 생긴 구멍은 내 곁에 있는 나오짱이 채워줬다. 꾹꾹꾹꾹 괜찮다옹 하며.



집사 언니 영화나 보자옹


"엄마 아빠 집에 고양이 있다! 이름은 나오짱이다."


“고양이 키울라고. 사진 보내줄게. 예쁘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말한 건 한 참 뒤였다. 막상 사고 친 딸을 혼내지는 못하고 “고양이 맞나. 이렇게 생긴 고양이도 있나. 조상 중에 원숭이가 있었나 보다.”라며 신기해하셨지만, 끝엔 “나비 좀 키우다가 남 줘라”라는 얘기셨다. 나오짱 보다는 국민고양이 이름인 나비로 불렸지만, 그 이름에 고양이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담긴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명품백 쇼핑하듯 비싼 고양이 잠깐 키우다가 보낼 거라고 생각하셨겠지만, 결국 내가 아닌 두 분이 나오짱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함께 하셨다. 그렇게 열다섯 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나오’ ‘오짱이’ ‘나비’ ‘고양아’ 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내 스타벅스 닉네임으로 남았다.


“나오짱 고객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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