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스물여섯 살에 고양이를 처음 만났고, 서른여섯 살엔 내 아이와 10살 차이 나는 고양이와 헤어졌으며, 마흔 살에 그 고양이와 영원히 이별했습니다. 나의 첫 고양이는 15살 생일을 한 계절을 남긴 채 벚꽃이 피던 어느 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지요. 나오짱이 떠난 뒤 남은 후회와 반성을 담아 나의 첫 번째 육아 반성기를 쓰려고 합니다.
어쩌면 함께 있으면서 얘기했던 ‘다음 생에 너의 반려묘가 될 테니 꼭 나의 집사로 태어나줘’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언젠가 나오짱이 집사가 되어 묘연을 맺을 나의 글을 보길 바라봅니다."
나는 가끔 사주를 보러 간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받듯이 사주, 타로 등을 보는 게 힐링이 될 때가 있다. 20년 정도 봤더니 이제 내 사주에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은 10년 단위로 바뀌는데 (말로는 대운이 시작된다나 --;;;) 26세, 36세, 46세, 56세 등이라고 한다. 쉽게 예를 들어 26번 버스를 탔다가 36번 버스로 환승하고, 또 46번 버스로, 56번 버스로 바꿔 탄다는 얘기다. 버스마다 노선도 여정도 다를 테니 10년씩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26세에서 탑승한 버스와 36세에 환승한 버스 노선은 다른 것 같다. 나는 지금 버스 정류장에서 46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라 쓰고 미안함이라 읽는다.
나오짱은 나의 첫 고양이이다. 26번 버스에 승차했던 그 해 나에게 왔다. 스노우캣에 빠져있던 중에 친구의 친구네 샴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미니홈피에서 보고, 그 아기고양이를 분양받기로 했다. 마침 샴의 매력적인 컬러에 반해있던 찰나.
어려서부터 개,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다. 부모님이 질색하셔서 집 밖 마당에서도 함께 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나만 고양이 없어’ 요즘 시대의 분위기를 탄 것도 아니고, 충동적으로 아기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한 것. 퇴근길 발걸음을 서둘러 집 근처에 사는 친구(의 친구) 아파트에서 그 부모님과 어미묘 포링이, 나에게 올 아깽이를 만났다. 입양비와 함께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아이스크림 상품권을 선물로 드리고 아기고양이를 데려왔다.
집으로 오는 5분도 안 되는 길이 어찌나 떨렸던지...... 쇼핑백 안에 수건을 깔고 아기냥이를 올린 뒤에 행여나 봉투 밖으로 뛰쳐나갈까 조심스레 안고 걸어왔다. 낯선 봉투 안에서 낯선 언니를 따라 오는 내내 불안함에 애옹애옹 하던 그 녀석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자취를 감추었다.
고양이를 오래 키운 친구들 덕분에 아기고양이 맞이에 필요한 물품, 먹을거리들은 준비했지만 난 전형적인 고알못이었던 터라 고양이가 낯선 환경에서 구석에 숨는 본능을 몰랐던 것. 한참을 찾아 옷장 서랍 뒤에 숨어 있는 걸 발견했고 밤새 밥도, 물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는 녀석을 집에 놔두고 아침에 출근하기란 맘이 편치 않았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집안 곳곳을 탐험하고 퇴근하고 오면 숨어있기를 일주일 정도 반복했을까? 주말 늦잠 자고 있는 내 옆으로 수북이 집먼지를 뒤집어쓴 아기고양이가 왔다.
이 구석쟁이 녀석을 ‘먼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03년 7월 6일생 아기고양이는 엄마 포링이 품을 떠나 9월 10일 나에게 왔다. 내 나이 26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