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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생이 키워낸 집사 #3 나오짱의 3인가족탄생기

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by 벨롱님
3인가족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때 나오짱에게도 가족을 만들어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내 기준에 맞는 신랑감을 고르고, 내 맘에 드는 새끼고양이만 키우려고 욕심부린 적이 있지요. 어쩌면 집사의 못난 이기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고양이를 키운다면, (물론 지금 내 아이에게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 및 행동가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양이가족관찰기


나오짱의 가족은 보호자언니인 나, 그리고 나의 남동생 이렇게 셋으로 시작했다. 남동생의 발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오짱은 오빠를 잘 따랐다. 언니가 출근하고 오빠가 쉬는 날엔 방에서 만화책 보는 오빠 옆에서 발 냄새를 맡으며 간지럽히곤 했다. 나오짱은 오빠가 태워주는 비행기도 무척 좋아했다. 오빠의 발 사이즈 만했던 아깽이는 청소년냥이로 훌쩍 커버렸고, 오빠가 일본으로 떠난 뒤 나오짱 가족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오짱과 나오짱의 딸 페코, 그리고 보호자언니인 나 셋이 된 것이다.


나오짱을 시집보낸 적이 있다.


이녀석에게 발정이 왔버렸따
시집보다는 천하장사가 더 좋았던 시절의 고양이


고양이를 처음 키우던 그때 사람들은 고양이를 보면 “얼마예요?” “비싼 종이예요?” "어디서 샀어요?"라고 먼저 물었다. 길고양이가 도둑고양이로 불리던 시절, 좋은 혈통만이 집에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커뮤니티 안에서도 혈통서를 자랑하는 집사들이 많았다. 나 역시 '나오짱이 좀 더 좋은 혈통이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마음은 '시집보낸다면 혈통 좋은 수고양이에게 보내리라'로 이어졌고, 실제로 나오짱에게 첫 발정이 온 뒤에 신랑감을 물색하곤 했다.


굳이 혈통 좋은 잘생긴 신랑감에게 돈을 주며 시집보낸 건 집사로써 (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정말 후회하는 일 중의 하나다. 내가 만난 사람은 예상과 달리 분당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러 고양이들을 케이지에 가둬서 키우는 전문 브리더 같았다. 그냥 고양이 몇 마리 가정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전문 업자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나는 보내지 않았을까?


나오짱에게 부족한 걸 가진 신랑에게서 훌륭한 DNA를 지닌 새끼를 갖고 싶다는 내 욕심이 앞선 결정이었다. 신랑감은 확실히 잘생겼고, 멋있었지만 … 그 아이가 갇혀 있는 케이지 안은 그다지 좋아보지 않았다. 그 안에서 며칠 정도 합사를 한다고 했고, 나는 미안함 반, 기대감 반으로 나오짱을 거기에 맡기고 나왔다. 이틀 뒤쯤 나오짱이 너무 낯설어해서 합사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케이지 안에 있었을까?'는 의문이 들었다.


나오짱을 다시 데리러 갔을 때 우리 애도 케이지 안에 혼자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고양이들과 밤낮을 보낸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일을 보는 실수까지 한 걸 보면 나오짱에게 내가 참 못난 짓을 했다. 단지 고알못 집사여서가 아니라 내 헛된 욕망과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고 했던 이기심이 확실했다.


그때 정말 미안했어.


딸기담요를 애정하는 고양이


크리스마스이브, 내 고양이의 연애


그 후 나오짱에겐 가끔씩 만나는 연하 남친이 생겼다. 서로 일이 있으면 임시로 탁묘 하자던 보호자가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전쯤 여행을 간다고 해서 잠깐 데리고 우리 집에 있었다. 고알못 언니는 나오짱의 발정 시기와 겹칠 때라는 걸 몰랐던 터다.


퇴근 후 집에 온 저녁 둘의 19금 장면을 목격한 뒤 충격에 빠진 나는 무척 화가 났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허락하지 않은, 즉 내 맘에 들지 않은 수컷과 사랑을 나눴다는 것'이었다. 그 건 내 딸이 나 모르게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 남자애가 내 맘에 안든다는 흔한 엄마들의 얘기다. 딸에 대한 분노, 배신감,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더 화가 난 건 나오짱이 보인 감정이었다. 그 아이와 있을 때 행복해하던 모습이 이내 그리워하고, 애틋해하고, 슬퍼하는 표정을 나에게 보인 것이다.


난 여전히 이기적이었다.



그날은 하필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찬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둘은 힘든 각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두 고양이가 애달프도록 애옹되는 소리가 연휴 내내 가득했다. 수컷냥이는 보호자가 여행에 돌아오자마자 돌아갔지만, '혹시나'는 '역시나'가 된 상태. 두 달여 쯤 뒤 삼일절 새벽에 나오짱은 1남3녀 아기고양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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