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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생이 키워낸 집사 #8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by 벨롱님
첫 글에서도 전했지만, 이 글은 집사가 고양이들에 전하는 반성문입니다.

어쩌면 집사로써의 인생은 두 가지 질문으로 가득했습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있을까?' 이다가, '내가 <다시>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될까?' 였지요. 물론 (No라는) 답정너 겠지만, 저는 정말 다시 고양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고선생이 남기고 간 가르침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 덕분에 두 번째 육아를 잘해오고 있는 엄마라고 다독입니다.



2017년 7월 6일, 15살 생일


목요일 아침, 여느 날처럼 출근하느라 정신없는 아침이었다. 야근을 덜하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노트북을 싸들고 퇴근,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4년 정도 했나 보다. (돌잔치 끝내고 밥벌이하러 나갔으니......) 캘린더에 '나오짱 생일'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아 맞다. 나오짱 15살 생일이지. 이따가 아빠한테 전화해야겠다' 생각하고 출근했는데, 나오짱 생일을 다시 떠올린 건 주말이 되어서였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뭔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서운 여자의 촉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 '나오짱 사료와 모래를 언제 보냈더라......' 기억해내려고 노력했다. 단골 쇼핑몰에 들어가 주문내역을 조회했다. 사료와 모래를 보내야 하는 시기가 많이 지났다는 걸 알아냈다.


아빠가 마트에서 샀나? 아니면...


이 '아니면'이라는 세 글자가 나를 무섭고도 두려운 상상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설마'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나는 나오짱이 부산에서 지낼 때 먹거리(사료, 영양제, 간식 등)와 모래를 담당했다. 아빠는 나보다 더 꼼꼼한 성격이라 나오짱의 급여량을 매일 체크하고, 배변 상태도 확인해서 어떤 사료를 즐겨 먹는지, 소화는 잘 되는지, 화장실은 잘 다니는지 확인해서 알려주셨다. 노령묘다 보니 먹는 게 시원찮고, 요즘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걱정하셨던 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도저히 아빠한테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배우질 못했다. 나는 무척 무서웠고, 피하고 싶었다. '곧 엄마를 만나니까,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생각하고 며칠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애월에서 전한 안녕


제주도에서 엄마를 만나는 날, 공항에서 픽업하고 애월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오짱은 잘 지내나”

엄마가 깜짝 놀래 말했다. “몰랐나. 고양이 없다. 아빠가 아는 집에 보냈다고 하던데. 아빠가 니한테 얘기 안하드나”

“그게 언젠대” 다시 물었고,

돌아오는 답은 “봄이었지 아마”였다.


운전 중에 아빠한테 전화해서 고양이 어디 갔냐고, 누구한테 갔냐고 물었다.

“어디 멀리 갔다”라고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어디? 멀리? 혼자서?”라고 물으니 “응.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혼자 멀리 갔더라”라고 했다.

“언제?” “벚꽃 필 때”

엉엉 울었다. "나한테 바로 연락이라도 해주지, 날짜라도 기억해주지…"


나오짱 혼자 그 길을 가게 한 것도, 그 길에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도, 이 힘든 길을 아빠 혼자 속앓이 하게 만든 것도 모두 미안했다. 그렇게 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는데, 생일 지난 여름에서야 알게 되었다니...


제주에 있는 내내 울었고, 돌아와서도 울었다. 내 고양이가 나 없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주변에 말할 자격도 없는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했다. 내 마음은 아무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은 나오짱이 하늘나라에 간 때다. 벚꽃을 볼 때마다 나오짱을 떠올린다. '살면서 너에게 못 한 게 참 많은데 우리가 한 약속 꼭 지킬게'라고. 나는 나오짱에게 늘 내세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내가 고양이로 태어날 테니 네가 내 집사가 되어 다시 만나자고. 엄마 소원은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는 거라고 하니 꽁이 소원은 엄마의 아기고양이로 태어나는 거란다. 내가 아기고양이 데리고 너에게 갈게. 나오짱 꼭 다시 만나. 안녕

RIP




에필로그) 고선생 이야기

종종 부모님 댁에 두 고양이들을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KTX 안에서 아무 일 없게만 해다오 기도하며 사람들 눈치 보는 일은 결코 쉽진 않았지요. 애옹애옹 하는 녀석들이 신기한 사람들도, 요물이라고 생각하며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요. 어느 날 내 옆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으셨습니다. 옛날분이라 혹시나 고양이 울음소리에 기분 나빠하실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말씀이 “아이고 우리 고선생이 여기 계셨네”라고 하셨어요. “고선생이요?”라고 되물으니 “그럼 고선생이지, 참 예쁘고 점잖으시네”하고 웃으셨습니다. 고선생이라는 말이 그냥 웃기다고만 생각했는데 키우면 키울수록 제가 이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그 어떤 쌤보다도 존경하는 고선생들에게 몰라서, 이기적이어서, 용기가 없어서 늘 후회했던 집사가 반성문을 올립니다.




냥이를 사랑하는 아파트에 살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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