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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생이 키워낸 집사 #7 고양이 대신 아기

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by 벨롱님
살다 보니 선택의 갈림길이 여럿 있었습니다. 후회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이든 좋은 결정이겠지요. 두 고양이들과 아기를 같이 키울 수도 있었는데 결국 고양이들보다 아기를 먼저 챙겼습니다. 지금 7살인 아이는 어려서부터 푸드 알레르기, 아토피, 그리고 고양이&개 털 알레르기가 있어 어짜피 같이 키우지 못했을 거라 위안을 하지만, 처음 그 결정을 후회합니다. 고양이들과 같이 키우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결국 그 핑계에 숨어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두 고양이들과 결국 이별했으니까요.




Surprise!! 집사의 임신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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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정한 샴세트 (나오짱 & 페코)


새집에서 1년 정도 살았나, 부산에서 나오짱이 왔다. 나오짱과 다시 만난 페코는 불안했지만 각자의 영역을 만들어줘서 그런지 예전과 다르게 잘 적응해 나갔다. 둘이 잘 지내나 싶어 다행이다 여겼는데 예상 밖의 새로운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나오짱이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한 걸 알게 되었다. 임신 중에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것에 대해 잘못된 정보들이 떠돌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이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재촉했다. 산부인과에서 톡소플라스마 항체 검사를 했고,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대부분의 집고양이들에게서는 톡소플라스마 감염 이슈는 생기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내 가족이니 한집살이를 계속했다. 회사를 쉬고 있는 임산부의 일상은 무료하다. 친정 엄마 아빠도 멀리 계시고 집 밖으로 친구들 만나러 다니기도 귀찮아서 집과 산부인과만 오가던 나는 매우 오랜만에 두 고양이들과 하루를 함께 했다. 나오짱과 페코가 나의 태교에 일등공신이 되어준 셈. 나오짱은 그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임신과 출산의 애로사항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KakaoTalk_20190821_124339812.jpg 나오짱의 동그란 눈동자에 맺힌 내 모습


내가 먼저 해봤는데 괜찮아, 괜찮아 … 집사 언니도 할 수 있을꺼다옹 (이러면서)

아기와 고양이들을 같이 키울 수 있을까?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가면서 고양이들과 나는 안정을 찾았지만 고민의 본질은 그대로였다. 아직 출산일이 남았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미뤄왔던 것. 그래서 '고양이들과 아기를 같이 키울 거냐, 말 거냐'며, 모두들(특히 양가 부모님) 아기와 한 집에서 키우는 것에 대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역시 그랬다. 엄마가 되려고 하니, 고양이들보다 아기가 더 우선이 된 것이다.


여러 방안이 나왔다.

1) 고양이들을 베란다에서 키운다. 캣타워와 화장실, 식사 공간도 모두 베란다로 옮긴다.

2) 고양이들을 내 방 또는 신랑 방에서 키운다.

3) 출산 후 산후조리 기간 동안만 친정 가족들에게 맡긴다.


먼저, 1안은 괜찮아 보였으나, 겨울에 매우 추운 베란다를 고양이들 공간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2안도 현실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 공간이 좁아질수록 두 고양이들의 영역싸움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3안을 선택해 출산 후 산후조리 기간인 100일만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했다. 100일 정도면 나도 괜찮아지고, 아기도 괜찮을 꺼라 생각했다. 당분간 나오짱은 부산에서, 페코는 남동생네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출산 일주일 전 … 나는 만삭의 몸으로 나오짱과 페코를 목욕시키고 손발톱을 깎았다. 두 고양이들을 남동생네에 보내고, 그 뒤 아빠가 나오짱을 부산으로 데려가셨다.


우리는 또 헤어졌다


출산 예정일 전날 아침 양수가 새기 시작해서 급하게 입원을 했고, 아기는 예정일인 40주 0일에 유도분만으로 태어났다. 신생아를 돌보면서 고양이들 안부가 궁금했지만 잘 지낼 거라 여겼다. 100일 지나면 또 같이 살 꺼라고 믿었으니까......


나의 산후조리 때문에 친정 엄마가 올라오시고, 우리집과 남동생네를 번갈아 지내시면서 엄마가 주말마다 페코를 케어했다. 출산 두 달쯤 지났을까 엄마는 페코가 큰일이라며 걱정하셨다. 일이 바쁜 남동생이 사료만 겨우 채워주는 정도라 화장실도 지저분하고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어 문제 행동을 다시 보인다고 했다. 막상 아기를 키우다 보니 고양이들을 데려올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출산 후 나는 아기를 돌보면서 페코의 새로운 보호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KakaoTalk_20190821_124436984.jpg 출산 후 첫 커피는 페코 새 보호자를 기다리면서


페코의 새 보호자를 소개 받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을 구했고, 페코는 매우 적극적인 성향의 A 보호자 집에 가게 되었다. A와 A의 부모님은 개냥이 성향의 고양이를 기대하고 입양을 했는데, 며칠 낮밤을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는 소심한 페코를 보고 맘에 들지 않는다며 파양 했다. 결국 다시 남동생 네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새 보호자를 찾았다. 한 고양이 커뮤니티에 올린 페코 소개글에 여러 명의 예비 집사들이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 중에서 운명처럼 B 보호자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B는 페코를 소개하는 글을 보고 자기와 닮았다고 했다. 나 역시 짧은 인사글에서 페코 감성을 느꼈다. 홍대 인근 반지하방에서 혼자 산다고 했고, 미술을 한다고 했다. 친구도 없고 혼자가 편하다고 했다. 어려서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다고 했다.


조심스레 페코를 데리고 그 집에 갔을 때 놀랍게도 페코는 두려워하거나 낯설어하지 않고 마치 익숙한 친구 집에 온 것처럼 방 곳곳을 둘러보고 화장실에도 가고 밥도 먹었다. 나 역시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둘의 외로움 케미가 잘 맞는다고 느껴졌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야 하는 사이 같은....... 내가 가고 나서도 페코는 애교냥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며 사진을 종종 보내줬다.


어쩌면 페코는 조용히 혼자 사는 집사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집사의 관심을 그 어떤 동거인이나 동거냥이 아닌 오롯이 혼자 받고 싶었던 성향이었던 거다. 집사언니가 먼저 사랑한 나오짱에게 가려져서 자신의 애교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나오짱을 공격해 언니의 관심을 끌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몇 년 뒤 B는 페코를 데리고 이탈리아에 간다고 연락해왔다. 이탈리아인 남자친구와 결혼해 이탈리아에서 살게 되었는데 둘다 페코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전했다.


페코야 이탈리아에서 잘 지내고 있니? 벌써 14살이구나. 나오짱 보고 싶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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