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집사의 육아반성기 - #고양희씨 (2003~2017)
나 고양이 키워
나 고양이 두 마리 키워
(둘이 많이 싸워서) 나 고양이 둘 중 한 마리만 키워
(아기 낳아서/키우느라) 나 고양이 다른 곳에 보냈어
나 이제 고양이 없어
...
편애의 시작점
나의 고양이 집사 15년의 인생은 저 다섯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반성문의 시작을 언제부터 해야 할지 생각해봤다. 고양이를 충동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던 2003년? 아니면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같이 키우기로 맘먹었던 2005년? 그것도 아니면 나오짱과 페코의 갈등이 깊어 페코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맘먹었던 2009년? 그 이후로도 여러 순간이 떠올랐지만 나오짱과 페코의 갈등 속에 적절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우절 장난같이 페코와 이별했다고 표현했는데 애를 보내지 않고 둘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을까 다시 고민해봤다. 수의사들을 더 찾아다니고, 각방 생활도 더 시도해보는 등 둘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노력했다면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 노력의 결과가 긍정적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모든 문제의 원인이 페코에게 있다고 단정 짓고 페코를 다른 보호자에게 보내려고 했던 내가, 그게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도 기억 안에 살아 있다.
페코를 보내고 나오짱과 둘이 지내는 시간은 편안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은 '둘이 싸워서 또 나오짱의 어딘가가 찢어져 있는 건 아닐까', '집 곳곳에 뽑힌 털이 한 뭉텅이씩 날려 난장판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내가 있는데도 밤마다 둘이 하악질하며 털을 세우고 몸을 부풀리며 싸울 때면 무서웠다. 이 둘 중 누구 하나 편을 들다 내가 또 물려 남아나지 않겠구나 … 나는 페코에게 물리는 게 두려웠다. 내 손에 구멍이 뚫리는 경험을 해봤으니까. 나오짱과 나를 공격하는 페코가 무서워서 급하게 어딘가로 보내고 싶었다.
2013년 여름 나오짱과 페코를 보낸 뒤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이 아기에게로 쏠렸다. 아기가 하루하루 커가는 소식은 궁금했지만, 그 아기를 낳은 산모는 단순히 젖먹이로 잊히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산후우울증의 시작이겠다 생각했다. 나를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챙겨주고 가슴 아파 한 사람은 친정 엄마였다. “난 내 새끼가 지 새끼 키우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갓난쟁이한테 메어서 못 먹고, 못 자고, 못 씻는 모습 짠하다”라고 늘 얘기하셨다. 맛있는 거, 좋은 거는 아기보다 나에게 먼저 먹이셨지만, 나는 아기를 먼저 챙기고 있었다. 엄마가 말한 '내 새끼가 새끼를 키우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은, 나오짱이 새끼고양이들을 키울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동일하다. 내 첫 고양이가 새끼들을 키우느라 모든 걸 양보하는 모습에서 나는 점차 나오짱만을 편애하는 괴물집사로 변해갔던 것 같다.
둘째는 환상 속에
외동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둘째에 대한 질문일꺼다. ‘하나는 외롭다, 둘은 있어야 한다’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이다’ … 과연 하나는 외롭고 둘은 외롭지 않을까? 나 역시 고민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둘째는 왜 내 환상 속에만 있을까.
고양이를 키울 땐 한 마리 보단 두 마리가 좋겠다고 결정했고, 두 마리를 키우다 보니 (여러 이유로) 다시 한 마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고양이들은 어땠을까? 나오짱은 혼자여서 외로웠을까? 나오짱이 외로워 보여 둘을 빨리 만들어주고 싶었을까? 나오짱에게 아기고양이를 함께 있게 해 준 게 선물이었을까? 여전히 이 질문에 답을 못 찾겠다. 내가 고양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내 맘만 해석하고 행동했으니까.
페코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 그리고 나오짱과 페코를 함께 잘 키우지 못했다는 건 집사로써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트라우마는 집사에서 엄마로 역할이 변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째에게 첫째만큼의 애정을 쏟아줄 수 있을까? 아니면 첫째에게 전과 동일한 애정을 전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젠 터울이 많이 지는 나이라 둘째에 대한 고민은 줄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처럼 쏟아질 때가 있다.
물론 좋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좋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페코에 대한 미안함이 아직도 크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