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포틀랜드, 또다시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한달살기
아이가 어린이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라고 물으니 키가 120cm가 된 것 같다고 지난번에 못한 잭과 콩나물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에서 놀면서 포틀랜드의 Children's Museum에 갔던 게 떠올랐습니다. 만들고, 노래하며 그곳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그 일요일처럼 보냈습니다. 어쩌면 포틀랜디언처럼 노는 게 별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그 순간에 충실하다면요. :)
#포틀랜드의힘
포틀랜드에서 아이와 처음 간 박물관은 OMSI(Oregon 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였다. 여러 곳을 갔지만, 우린 OMSI를 가장 사랑했다. 또 가고 싶은 곳으로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OMSI를 얘기해 다시 가서 실컷 놀았다. 호손 브리지 옆에 위치한 OMSI는 웰레밋 강 건너 다운타운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도 훌륭했지만, 내부 다양한 체험 시설에 반한 곳이었다. 딱딱한 과학을 기반으로 한 곳이지만, 물리, 화학, 생물, 천체와 우주, 환경 등에 대해서 흥미를 갖도록 해주었다. 이 곳의 과학은 1) Help Others 2) Collaborate 3) Think Creatively 이 3가지 철학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있었는데, 난 이 메시지가 포틀랜드라는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꽁이도 앞으로 살면서 이 세 가지를 기반으로 생각하며 의사 결정하면 좋겠다.
#엄마의소원 #1일1파크(또는 놀이터)
아직도 포틀랜드 하면 우리가 머물렀던 집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포틀랜드의 모든 것이 좋았다. 어느 날 아이는 나에게 미국에 와서 뭐가 제일 좋냐고 물었다. 엄마는 미국 놀이터를 한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답했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이 마법 같은 놀이터... 난 가능하다면 놀이터를 정말 비행기에 태워오고 싶었다.
LA와 샌클레멘테 이어 포틀랜드의 집을 선택한 이유엔 근처에 공원과 놀이터가 많다는 점이었다. 걸어서든, 차로든, 포틀랜드의 숲과 공원을 맘껏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메리트다. 고양이가 걸어 다니니 조심하시오라는 표지판이 있고, 다람쥐들이 집과 공원을 맘껏 산책하며, 한국보다 10배 정도 될법한 도토리들이 즐비한 곳.
캘리포니아의 놀이터가 곱디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곳이라 맨발로도 놀 수 있다면, 오리건의 놀이터엔 나무 조각이나, 나뭇잎, 흙 등 자연 그대로를 지키려는 곳들이 많다. 놀이터의 디자인과 시설도 아이 중심이다. 우레탄 바닥이거나 오래된 모래 놀이터 일색인 한국과 달리 놀이터의 콘셉트도 제각기 자유분방해서 놀이터만 투어해도 2주는 모자랄 것 같았다. 비가 오면 산책을, 맑은 날엔 하교 시간대에 맞춰 아이들과 놀 수 있도록 해줬다. 정말 수만 가지 취향의 놀이터에서 놀았다. 아이를 자유롭고, 진취적이고, 창의적으로 그리고 아이답게 해주는 놀이터에서 노는 건 그 어떤 여정보다도 중요했다.
#서점에_간다는_것
나는 외국에 가면 늘 서점을 들린다. 여행길엔 시간을 내서 더 자주, 출장길엔 가장 대표적인 곳에 가서 책을 산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모르는 언어가 적힌 예쁜 책들이 집에 많이 있다. 내용을 몰라도 그림, 사진, 느낌으로 읽는다. 그림을 보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이와 외국에 있을 때에도 서점으로 놀러 간다. 일본에서도 츠타야나, 무지 북스, 뮤지엄 샵에서 그림책이나 액티비티북을 주로 구입해왔다. 특히 포틀랜드는 취향을 저격하는 독립서점이 즐비한 곳이니, 여기서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었다. 읽지도 못하지만 좋아하는 그림의, 캐릭터의 책을 가져와서 읽는 아이를 볼 때 흐뭇했다.
포틀랜드엔 독립서점이 꽤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다운타운의 관광명소이기도 한 파웰북스다. 한 블럭을 차지할 정도의 대규모로 신기하게도 새 책과 중고 책을 함께 소개한다. 섹션별로 잘 정리된 구획에 직원들이 직접 손으로 써서 소개하는 후기들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온기가 담겨 내 옆에서 누군가가 이 책을 소개하는 듯한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아이는 동화책 코너에 앉아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부지런히 골라와 읽었다. 그동안 나는 포틀랜드를 추억할 영어 그림책을 골랐다. Larry gets lost in Portland, 할로윈 테마의 Pick a Pumpkin, 그리고 미국 와서 빠진 My Little Pony 책 등...
로이드 센터엔 반스앤노블스도 있다. 하지만 로컬들은 반스앤노블스를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으로 뉴욕 갔을 때 외로웠던 2주 동안 매일 들려 심심함을 달랜 그 서점이 여기선 인기가 없다니.... 반스앤노블스에선 할인 매대에 올라온 어린이 책들을 주로 골라왔다.
그리고 집 근처 앨버타 스트리트에서 발견한 그린빈 북스는 아이 전용 독립서점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아이는 이곳도 매우 좋아했다. 근처에 미술용품, 다양한 스테이녀서리를 파는 콜라주 샵이 있다. 여기도 아이와 함께 가보길 추천한다.
#포틀랜드답게 #오리건답게
미국 사는 친구의 인스타그램에서 늘 부러웠던 건 가을이면 애플피킹에 펌킨패치를 간다는 것이었다. 9월의 오리건주에서도 이 모든 걸 할 수 있다! 미국 과일은 대부분 맛있다. 그중 사과, 복숭아, 자두는 한국보다도 훨씬 당도가 높아서 한 번에 여러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다. 계속 과일을 사 먹느니, 애플피킹을 해보기로 했다. 한국 가기 전까지 먹을 과일을 직접 수확해오자가 취지였지만. 구글링 끝에 포틀랜드 인근 수많은 과수원 중에 마운틴 후드가 보이고, 과일 종류도 많고, 놀이터도 있으며, 와이너리까지 갖춘 곳을 발견했다. Mt View Orchards라고. 과일을 따고, 애정하는 리즐링, 피노그리, 로제, 피노누아 4종을 테이스팅 했다.
그리고 펌킨패치와 콘메이즈를 함께하는 곳 The Pumpkin Patch 가 있는 소비아일랜드로 드라이브를 했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드넓은 옥수수 밭에 대형 미로 도안을 그린 뒤 옥수수를 심는다. 옥수수가 자라면 미로 단서만 가지고 미로 찾기에 도전할 수 있는데, 운이 좋게 펌킨패치에 콘메이즈까지 도전해봤다. 직접 호박밭에 걸어가서 내 맘에 드는 호박을 따오는 경험도 무척 즐거웠다. 엄마도, 아이도 생애 첫 잭오랜턴을 완성한 경험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즐거운 할로윈을 보내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 날 호스트에게 선물로 준 잭오랜턴은 할로윈 잘 보냈을까?
이런 경험들에 용기를 내어 날씨와 상관없이 오리건주 컬럼비아 강 인근의 유명한 폭포도, 마운틴 후드 중간의 호수들도, 캘리포니아와 느낌이 완전히 다른 해안가들도 놀러 다녔다. 어쩌다 보니 영화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와 벨라 동선을 따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난 트레일코스를 걸어가는 시간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커피 #맥주 #와인
제주도 1일1모래놀이 때처럼 포틀랜드에서 난 카페를 즐겼다. 집엔 호스트가 사둔 노바 커피 원두가 있어 아침마다 커피를 내렸다. 스텀프타운 커피 덕분에 포틀랜드를 알았으니 여기 커피도 자주 마실 수밖에. 그 외 집 근처 로컬들의 단골집부터 SE 인더스트리얼 구역의 워터 애브뉴 커피, 앨버타 아트 디스트릭트의 바리스타 커피 등 힙스터들이 정성 들여 만들어주는 커피 한잔에 아이를 위한 핫초코 한잔을 더했다. 아이는 내가 각각의 커피맛을 논하듯 어느 집 핫초코가 맛있었는지 비교했다. 핫초코는 워터 애브뉴가 윈이었던 거 같은데... 커피는 어디가 윈이었더라, 훗
9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는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커피와 맥주, 와인을 일상에서 즐기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장을 볼 때면 오늘 마실 맥주와 와인을 구입했다. 우울증에 좋은 비타민을 광고하기 시작하는 쌀쌀하고 축축한 계절에 집에서 한잔씩 마시는 게 당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결국 포틀랜드 다운타운 야경도 못보고(별로 궁금하지 않다고 하여),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 11도 못사고(미국 사과폰은 영어로 나오니 한국 가서 우리말 나오는 걸로 사라며), 그 많은 빈티지 샵에서 (너무 비싸서) 쇼핑도 제대로 못했지만, 우린 포틀랜디언처럼 자전거도 탔고 나이키도 신었으니 그래도 버킷리스트는 제법 이룬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