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포틀랜드, 또다시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한달살기
2019년 7살 가을, 미국에서 한달살기를 했습니다. 그 절반을 보낸 LA-디즈니랜드-샌클레멘트에서 나에게 '가족'이란 단어를 다시 정의 내렸습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서 늘 함께하고 싶어 했던 아빠에게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고마워하기로 했습니다. 이 한달살기가 또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리틀미스선샤인
아이와 캘리포니아에 간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생각난 영화가 있었다. 흔해진 '라라랜드'와 '500일의 썸머'가 내 취향의 영화였다면, 우리 가족 셋을 생각나게 한 영화는 리틀 미스 선샤인이었다.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이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를 나가는 올리브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떠난 길에 깨닫는 진정한 가족애를 담았는데, 어쩌면 캘리포니아에서 우리도 비슷했던 것 같다.
#LA #기억남는곳TOP3
아이는 LA에서 제일 먼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쇼핑을 즐겼다. 그로브몰 안의 포터리반 키즈에서 맘에 드는 책가방과 필통 등을 일찌감치 골랐고, 입학식 날 입을 원피스와 액세서리, 그리고 운동화와 구두도 사야 한다고 했다. 그로브 옆 파머스 마켓에서 친구들과 나눌 스티커와 LA 기념품에...
7살 딸이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곳으로 LA 다저스 구장, 게티센터 정원과 그리피스 천문대의 달, 별을 얘기했다. 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주차장이 생각날 정도로 인상적인 곳. 평일 저녁 경기에도 그 많은 팬들이 야구에 집중하며 관람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게다가 직관한 날이 류현진 선수 등판일이었으니...
더 브로드, 라크마 대신 더 게티로 간 건 아이가 좋아할 모노레일, 정원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티 빌라까진 못 갔지만, 게티센터만 봐도 충분히 아이와 지내기 좋은 곳이다. 게다가 미로 연못과 아름다운 정원, 전망은 기억에 오래 남을 추억을 만들어줬다. 우리는 1센트씩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그날 저녁 잠자기 전에 들었는데, 이날 빈 아이의 소원은 참 특별했다. 엄마 아빠가 LA 도착하자마자 얼마나 '이거 미국에만 있는 거야, 여기서만 먹고, 사고, 볼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했길래...
우리나라를 미국처럼 크게 만들어주세요. 그럼 우리나에도 다 있으니까요.
9월 첫 토요일, 그리피스 천문대에서는 특별한 파티가 열렸다. 오후부터 천체 관측 동호회 분들이 각자의 천체망원경을 정원에 세팅하고 낮부터 달과 별을 관찰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해가 넘어가는 풍경과 함께 LA 다운타운에 격자판처럼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멋진 선셋 속에 우리는 크기도, 기술도, 모양도 다른 천체망원경으로 다양한 행성을 보는 기회를 얻었다. 정말 토끼가 살 것 같은 달의 표면을, 테를 두르고 있는 토성을 보며 환호했다. 이 아름다운 밤,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다.
그날 밤 나도 다시 소원을 빌었다. "정말이지. 우리 꽁이 소원 꼭 이뤄지게 해 주세요. 게티센터도, 그리피스 천문대도, 다 한국에 있게"
#샌클레멘테의선물 #아빠의소중함
아빠 육아라는 말이 유행처럼 보이지만, 육아에서 아빠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건 쉽지 않다. 임신 중일 때 파일럿으로 시작했던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예비 엄마들에게 아빠라면 저 정도는 해야지 라는 환상을 심겨주었다. 나 역시 '네가 저기 나오는 아빠처럼은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생각과 표정으로 신랑을 압박하기도 했다.
TV가 심어준 기대감 때문에 아빠는 서투르지만 경쟁하듯이 육아에 참여했고 바로 이 '서투른' 점 때문에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며, 그 이어진 잔소리는 부부싸움 등으로 커지게 된다. '나도 회사 나가고 돈도 벌고, 애도 키우고, 집안 일도 챙기는 이 상황에 회사 나가서 돈만 버는 것 외에 하는 게 뭐야?'라는 식의 아내 중심적인 사고는 아빠를 육아에 참여시키기보단, 내치게 만들 곤 한다.
특히 아이가 크면서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자 아이 친구 엄마와 삼삼오오 키즈카페도 공원도 가고 했다. 아이도 그걸 원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엄마들과 모여 수다 나누는 것이 즐거웠으니까.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아내와 아이 없는 집에서 편하게 TV 보고 쉴 수 있는 선물을 아빠에게 해준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빠는 아이가 고팠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 육아는 아빠가 뭘 더 해야 한다기보다는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하는 일상을 내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보내는 시간, 친구와 보내는 시간처럼,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엄마가 깨닫고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엄마와 있어도 좋지만, 엄마도 아빠도 같이 있으면 더 좋아하니까!
이 아빠 육아의 소중함을 깨달은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의 마지막을 보낸 샌클레멘테(San Clemente)라는 작은 해안 도시였다. 언덕으로 스페인 풍의 아름다운 집들이 즐비하고, 비치 옆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바다로 난 피어에서는 산책과 낚시를 즐기는 이 아름다운 비치에서 우린 오랜만에 셋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평소처럼 랄프에 가서 장을 봐오고, 매 끼마다 밥을 해줬다. 놀이터도 가고,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수영과 서핑, 모래놀이를 하며 놀았다. 아빠와 함께하는 마지막 날 꽁이는 선물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모래를 담아갈 작은 병과 조개껍데기로 만든 보석함... 그리고 예쁜 그림 돌.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한 딸에게 '여기서 사는 것 같은' 마음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