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포틀랜드, 또다시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한달살기
포틀랜드에서 종종 밤에 악몽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한국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벌써 한국인가?' 싶어 놀라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습니다. '아, 아직 포틀랜드여서 다행이야...' 마음을 쓸어내리며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2016년 겨울 제주에서도, 2019년 가을 포틀랜드에서도 한달살기의 엔딩을 지켜보는 건 먹먹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또 오고 싶지만 쉽게 오지 못할 이 곳, 나중에 썸머 캠프에 오길 희망하며 또 구글에 들어가 봅니다.
포틀랜드에서 마지막 날 호스트가 나에게 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떠니?" "나는 아쉽지만, 이제 돌아갈 때인 거 같다. 신랑이 한국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1) 내가 싱글맘처럼 보였구나 2) 남편을, 아빠를 빨리 만나야겠구나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유행 중인 엄마와 아이의 한달살기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표현해도 포틀랜디언의 눈엔 내가 Weird 할 수도.
#Hello_From_Portland
포틀랜드 하면 싱그러운, 기분을 좋게 하는 Hello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희한한 컬러의 헤어도, 턱수염도, 피어싱도, 타투도 낯설었던 사람들이지만 미국 그 어느 도시에서 보다도 따뜻하고 상냥함을 보였다. 우리가 만난 포틀랜디언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아낌없는 관심과 칭찬, 격려를 해주었다. 날씨 때문에 우울해질 수 있는 도시에서 억지로 생기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이제는 일상으로 자리 잡은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Hello가 우리가 사랑하는 로컬 커피에도, 도넛에도, 아이스크림에도, 맥주에도, 와인에도 녹아 있다.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나무에게도, 꽃에게도, 개와 고양이에게로 향한다. 모든 샵 앞엔 Doggy Bowl이 있으며, 길엔 고양이가 지나가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있다. 로컬과 네이버후드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래 동안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Hello와 함께 진실한 감정을 실어 늘 힘차게 외치는 Thank You도.
#포틀랜드라는_마법
사막 같은 캘리포니아의 선인장과 야자수와 달리 하늘 높이 뻗은 침엽수림과 일곱빛깔 무지개같은 나무와 꽃들, 그리고 어둑한 구름과 빗방울 사이로 해가 나고 솜사탕같은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동화 속 집의 마법에 걸렸다.
마당에서 계단을 오르며 문 여는 소리,
2층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소리,
베킷이 왔나 창 밖을 내다보는 소리,
루비랑, 페코랑, 베킷이랑 노는 소리,
폴라로이드 사진 찍는 소리,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하는 소리,
매직이와 이모냥이 등 인형 친구들과 노는 소리,
마이 리틀 포니 노래 따라 부르는 소리...
마법의 주문같은 아기자기한 소리들 속에서 뜨개질하듯 하루를 열고, 일상을 매듭지었다.
#YOUREDOINGFINE
아이와 집 근처 앨버타 스트리트를 걷다 발견한 그래피티였다. 고양이 Meow와 함께 여자 아이의 웃는 얼굴 옆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You're doing fine' 이 말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금 잘하고 있다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남을까? 포틀랜드가 나와 아이에게 준 교훈 같았다.
회사를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남편과 갈등하며, 불안한 노후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이 불안함이 나를 갉아먹고 욕심과 걱정을 키우고 있었다.
나 잘하고 있어
꽁아 너도 잘하고 있어
아직 7살인데도 다 잘할 필요가 있다고 은연중에 비추었을 수도 있다. 한글 몰라도, 영어 몰라도 괜찮다. 먹다가 흘려도, 놀다가 넘어져도, 엄마한테 혼날까 봐 순간 거짓말 한대도 괜찮다. 엄마가 자기보다 애착 인형 매직이를 더 좋아한다고 느낀대도 괜찮다. 너 역시 지금 잘하고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한달살기 #열린결말
한국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은 아이에게 물어봤다. '미국에서 뭐가 젤 좋았냐'라고. 나도 궁금했다. 이 한 달의 시간 동안 아이는 뭘 좋아했을까? 어느 날은 '미국 도토리 키가 커서 신기했다'하기도, '비가 자주 왔다'했으며, '친구가 있어 좋았다'라는 굉장히 소소한 대답을 꺼냈다.
'디즈니랜드에서 놀면서 엘사 여왕 옷을 입고 공주들을 만나 좋았어요'라던가, '가방도, 옷도, 장난감도 많이 사서 좋았어요'처럼 바쁘고 화려하게 보냈던 여정이 아니라 일상 속에 녹아든 포틀랜드의 하루하루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럼 나는? 잘 못하는, 못 알아듣는 영어지만 서툰 영어로 사람들과 얘기하고, 운전하고, 예쁜 미국 집에서 살아 본 게 행복했다. 특히 주방! 정말이지, 식기세척기와 음식물 분쇄기가 있는 싱크대가 우리 집 주방에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