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집사 Sep 04. 2024

세컨드 잡

최집사가 하는 일

 


이른 새벽, 알람보다 냥이들이 먼저 깨워준다. 이불을 뒤적이고, 정수리 냄새를 맡고, 발가락과 손가락을 물어뜯는 사이 천천히 잠이 달아난다. 꿎꿎이 자는 척하는 집사를 위해 노래도 불러준다. 다소 격한 사운드에 즉흥적인 멜로디라 장르는 알 수 없지만 매일 새로운 노래를 작곡해 들려준다. 미간을 한 껏 세우며 짜증을 내어보지만 주술 같은 고음에 못 이겨 일단 몸을 일으킨다. 당당하게 앞장서는 냥이들을 엉금엉금 따라나가 밥도 챙기고, 물도 갈아주고, 화장실도 치워주며 집사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끼 때부터 데려온 냥이들은 나를 어미 고양이로 알고 있다. 부르면 대답하고 안아주면 골골거리고 가끔 면상에다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 목젖도 보여준다. 밥 먹을 때 같이 먹고, 잘 때 되면 같이 눞고, 그러다 티격태격 싸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4시간 한 공간에 있다는 건 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과 동맹을 동시에 경험하는 일이다.



강아지들에게 산책 있다면 저들에게는 사냥이 있다. 중년의 집사도 건너뛸 수 없는 훈련이다. 저들을 따라온 방방을 다니며 격하게 사냥법을 익혀야 한다. 내 몸 같지 않는 육신을 이끌고 요리조리 피하고 숨고 내 달리다 보면 이내 동정의 눈빛이 느껴진다. 그렇게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며 그들의 무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그럼 그제야 배를 까꼬 엉덩이를 허락해 준다.



빗질은 매일, 손톱 발톱은 주 1회, 양치는 불시에 한 번씩 시행한다. 손톱을 깎을 땐 2인 1조로 움직이며 양치는 하도 난리를 피워 입냄새 농도에 따라 진행한다. (평소엔 양치껌과 스낵으로 대체한다.) 흐물거리는 몸뚱이를 사타구니에 고정시켜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기에 지도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처음엔 무슨 독립군처럼 완강한 자세로 일관하지만 내가 무릎이 닳도록 사정하면 이내 입을 열어준다. 악어새의 마음으로 녀석들의 입을 들추고 앙증맞은 앞니와 뾰족한 송곳니를 신속히 번갈아 닦는다. 치카치카치카…



목욕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여름에 시킨다. 물을 워낙 싫어하니 수차례의 협의 끝에 연중행사가 되었다. 그루밍에 타고난 아이들이다. 틈만 나면 뒷다리를 쳐들고 똥꼬를 핥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집에서 나만 잘 씻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큰 냥은 반려인이 맡고 작은 냥은 내가 데리고 들어간다. 저항과 탈출 시도가 심하기 때문에 같이 물을 뒤집어쓰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방문을 봉쇄하고 바나나우유 같은 츄르도 준비한다. 분노의 하악질과 억울송을 8절까지 들으면 목욕이 끝이 난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나면 물놀이 끝낸 아이들 마냥 오후 내내 곯아떨어진다.



 아기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며 마흔을 맞이했다. 그 사이 한 마리는 성묘가 되었고,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벌이 없는 일이지만 성취감으로 따지만 여느 기술직 못지않았다. 그들을 통해 전에 없던 존재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를 나보다 더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충만하게 해 준다. 아이는 없는 팔자지만 살면서 생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돕고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저들과 소소한 행복들을 촘촘하게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이전 14화 고양이 세수 요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