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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Nov 08. 2024

덜어내기 D + 81

20241108 공기는 찹찹 햇살은 따뜻

* 1670일째 드로잉 : 히떼로운 시간 ( 로스터리 히떼에서… )



- 새벽 3시 반만 되면 꾸리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마추픽추가 보이는 안데스 산기슭에 사는 라마처럼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나는 짜증으로 응징한다. 그러면 잘 자던 룽지도 깨어 턱을 괴고 구경한다. 한 올 한 올이 소중한 나이다. 단 한 가닥도 양보할 수 없다. 집사의 천둥 같은 하악질에도 아이는 물러서지 않는다. 낮에 탐한 뱃살과 젤리의 복수란다. … 뜯을 머리가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 날이 추워지니 수시로 화장실에 들락거린다. 냥이들도 동계 벌크업을 위해 하루종일 먹싸먹싸 모드다. 농번기, 수확의 계절이다. 하루에 서너 번씩 작은 방으로 가 감자와 고구마를 캔다. 올해도 우리 집은 풍년이다.


-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한 뒤 화장실을 정리했다. 수건을 갈고 샤워 부스와 세면대를 닦고 변기의 물기를 제거하고 발수건을 베란다에 널었다. 마침 빨래 다 되어 빨래도 널었다.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가계부도 쓰고… 조용히 우렁각시처럼 티 안 나는 일에 매진했다. 그런 일에 한바탕 기운을 빼고 나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는 마음이 들곤 한다.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지리산 작은 암자의 스님을 떠올린다. 내 안에 나를 다독이려면 종교의 힘을 빌려야 한다.


- 채소 가게에서 하품 단감을 스무 개만 원주고 사 왔다. 생긴 것도 크기도 각양각색 개성 있고, 조금씩 흠집도 있어도 오히려 다부진 맛이 난다. 그중에 물러서 홍시가 될 아이를 선별해 재단?으로 모셨다. 접시에 폭신한 천을 깔고 창가에 올려 두고 매일 같이 들여다봤다. 아침에 만져보니 이제 먹으면 될 거 같다. 그렌데 막상 잡아먹으려고 하니 짠한 마음이 든다. 그 사이 정이 든 거 같다.


- 오늘의 할 일 : 밥 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밤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불금 기분 즐기기.


* 뽀너스

https://www.instagram.com/reel/DCF8JQnyOMj/?igsh=MTZzMndpaWtnazg2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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