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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Nov 06. 2024

나뭇잎 수업 D + 79

20241106 냉정과 열정사이

* 1668일째 드로잉 : 냥냥어머니회



 - 아침에 환기를 시키려 창문을 여는데 주차장에서 낙엽을 치우시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긴 장대빗자루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몸짓에 나무들은 보란듯이 비듬을 털었다. 강원도 산골 부대 이등병의 마음이 느껴졌다. 문득 예전에 치료받을 때 빠지던 머리카락들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소 비움을 실천하는 어르신. 요즘 밤마다 머리카락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꾸리와 실랑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한치의 미련 없이 훌러덩 벗어던지는 그들의 겨울이 단순하고 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 지난 월요일 창원 오누이 북앤샵에서 진행하는 월요낙서모임에 다녀왔다. 떨리는 마음 반, 귀찮은 마음 반으로 고민만 하다가 혜자스런 가을의 분위기에 취해 용기를 내어보았다. 기나긴 은둔 칩거 생활을 끝내고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것만으로 다시 보통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런두런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무해한 시간과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다.


- 어제는 제주에 사는 친구 도요새에게 전화가 왔다. 페이스톡을 하자는 말에 흠칫 긴장되었지만 옷깃을 여미고 반가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가 섬으로 이사 간 지 한 달쯤 지났나… 도시에 살던 새가 고향으로 돌아간 것처럼 회춘한 얼굴이었다. 그곳에서의 일상을 말하며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덩달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친구를 둔 나는 복 받은 사람이구나. 착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  오전에 청소기를 돌리다 신발장에서 굴러온 낙엽을 발견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냥이들도 신기한지 삼삼오오 빙 둘러앉았다. 옆 동네 사는 녀석인데 수학여행 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마치 내 그림을 보는 거 같았다. … 세상에서 가장 좁고 깊은 세계를 그려야지. 버려지지 않는 하찮은 존재들을 밤하늘에 콕콕 별을 찍듯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오늘의 할 일 : 냥이들 모래 주문하기. 떡집에서 떡 찾아오기.


* 뽀너스

https://www.instagram.com/reel/DCAwsaSSG4n/?igsh=MmxtYzY0bWg2OX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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