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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 놀러온 외계 생명체들의 무해한 일상들

20250514 초여름의 길목

by 최집사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다. 당연히 10분 더 버튼을 눌렀다. 쉽게 다시 잠들 수 없다는 건 알 고 있었다. 그럼에도 냥이들과 한대 엉켜 뒹굴대는 호사를 포기할 순 없었다. 실눈을 가늘게 뜨고 몰캉한 뱃살을 조물거리며 오늘의 상태를 체크했다. 적당이 부푼 반죽처럼 찰랑거리는 감촉은 하루치의 무사를 예고해 주었다. 주방으로 나와 누룽지를 끓이고 내가 먹을 베이글도 구웠다. 지난 주말 큰 맘먹고 통밀가루를 사다가 만들어 둔 것인데 파는 것만 못하지만 기분이가 좋다. 오전에는 냥이들과 털 빗기 씨름과 양치 레슬링이 있을 예정이다. 애걸복걸, 엎치락뒤치락,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거 같아 티켓이라도 찍어 팔아야 하나 싶다. 배도 든든히 채웠고 녀석들 사랑도 가득 채웠다. 서둘러 화장실을 청소를 하러 가야겠다.


5시간 후…

전단지에 표시해 둔 대망의 세일날이다. 자전거를 끌고 건너 마을 식자재 마트에 다녀왔다. 아침 라디오에서 세종시 물가가 그렇게 비싸다고 하던데, 밥 먹으러 서울까지 가는 지경이란다. 투기의 부작용은 언제나 서민들의 몫이 되는 거 같다… 비싸지만 포기할 수 없는 아침 사과를 위해 마트 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지역마다 장날을 체크하고, 매일 오는 모바일 전단을 고시생처럼 정독하며, 어쩌다 한 번 장을 볼 때도 예습 복습? 의 마음으로 두세 군데 들르게 된다. 다행히 날씨가 더워지면서 채소가 풍족한 계절이 되었다. 그렇다고 재철 재료를 마구 사놓을 수 만도 없는 일이다. 기존의 재료들을 버리는 거 없이 잘 활용하는 게 우선이지 싶다. 나 하나 잘 살려고 맹목적으로 좋은 재료들을 남용하고 싶지 않다. 예쁜 플라스틱통에 새 모이처럼 담겨 새벽같이 배송되는 유기농 그릭 요거트도 좋지만 직접 정성 들여 만든 뚱딴지 두유 요거트가 마음이 편하다. 양념과 조미를 줄이고 건강을 생각하는 식사를 하면서 음식의 맛을 포용하는 능력이 향산 되었다. (맛은 포기했다는 소리는 이리 둘러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몸도 지구의 일부라는 걸 틈틈이 떠올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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