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호농원 '무궁화자전거길'과 무궁화전시동산
논산에는 국내 최대의 무궁화농원이 있다. 3만 8천평, 광석과 노성에 걸쳐서 있다. 사무실은 왕전리 장호에 있다. 장호무궁화농원 황토방은 늘 열려 있다. 전병열 사장이 사람을 반기기 때문이다. 방문해보면 사업장인지 놀자판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의 파격(破格)은 마음의 넉넉함에서 나오는 거 같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니 애국심을 앞장세워 국화(國花) 사랑을 강조해서는 곤란하다고 봐요. 꽃은 그냥 꽃이죠.” 무궁화 인생 30년째인 그는 이렇게 서두를 연다. 무궁화에 대한 오해가 몇 있다. 일단, 법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게 아니다. 관습법처럼, 나라꽃으로 인지되어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애국심 선양 차원에서 무궁화를 많이도 심었다.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에서처럼 무궁화 지천인 대한민국이다.
이 현상이 장점도 되지만 동시에 단점이자 한계다. 주변에 흔하다 보니 귀한 줄 모른다. 가꾸는 데도 인색하다. 어쩌다 꽃이 이뻐서 가까이 가보면 진딧물도 보이니, 기겁하면서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이 되기 일쑤다. “장미는 약을 자주 쳐요. 그거 반의 반만 관리해주어도 무궁화는 깔끔한데 말입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알게 모르게 강요된 애국심이다. 그로 인한 반발심은 수면 밑에 있다. 그런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지 않은 사랑은 단명하기 일쑤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궁화 공원이 많다. 홍천군은 무궁화군이다. 무궁화를 국화로 승화시킨 남궁억 선생의 기념관은 무궁화 최대 명소이다. 서울에는 궁정동 500여평 외에 마곡동 서울식물원, 완주와 보령 성주산 등지의 무궁화 동산은 100% 정부지원사업으로 조성되었다. 계룡대의 무궁화거리도 최장을 자랑하고, 장호농원 지척지간인 왕전초등학교에도 자그만 무궁화동산이 하나 있다. 광석면 지방도는 무궁화 가로수길이 길게 뻗어 있다.
몇 년 전부터 장호농원에서 독자적으로 벌이는 일이 두 가지다. 하나는 무궁화자전거길이다. 노성천 왕전리 뚝방길 밑으로 농로가 있다. 거기 잡풀 우거진 곳에 1km 남짓 무궁화를 쭉 심었다. 이제는 제법 커서 장마철에도 빨간 꽃을 피워 뚝방길 운치를 한껏 돋우고 있다. 그 밑으로 흐르는 관개용수로에는 우렁이와 대합이 자전거길과 경주하고 있다.
또하나의 민간사업은 노성면 항공학교 뒤쪽의 무궁화동산이다. 5천평의 야산에 3천평 정도를 일구어 놓았다. 무궁화전시장이다. 세계적으로 무궁화는 300여 종이고 한국에는 250종이 있다. 장호농원동산에는 157종이 이름표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비롯하여 광석 노성 10여 곳 분산되어 있는 3만여평 농원에는 주품종 30여 종이 자라고 있다. 그 중 가장 인기있는 무궁화는 삼천리, 광명, 화합 순이다.
이렇게 받아적는 기자도 무궁화 품종을 잘 모른다. 시청의 공무원이나 공원설계사도 무궁화 품종별 특색을 잘 모를 수 있다. 멋진 무궁화 동산 조성의 관건은 사전 지식이다.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보고 설계하거나 결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직접 보고 느끼는 현장 교육이 필요하다. 인근 세종시 녹지과에는 무궁화계가 있다. 여기서는 무궁화 수종 결정을 앙케이트 조사로 하였다. 삼천리가 뽑혔다. 한결 진일보된 결정인데, 이처럼 시민이나 공원조성자들이 좀더 다양한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전시효과’가 노성에서 구현되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을 무궁화의 세계에 안내해주는 ‘교육효과’도 병행한다.
동산 초입 쉼터에는 무궁화 이야기가 총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는 근래 협약을 맺은 곳들의 홍보판도 눈에 띈다. 무궁화는 그 상징과 역사만으로도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실용성에서도 그러하다. 일단 꽃의 활용부터..... 몇 년 전 아모레퍼시픽에서 무궁화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었다는 화장품 광고를 TV로 내보냈다. 천리포수목원이 나왔다. 무궁화를 품종별로 전시해놓은 무궁화연구학습장이다. SD생명공학에서도 연구를 거듭하여 국내외 특허출원을 여러 건 해놓은 상황이다. 화장품은 물론 식품의 상용화를 추진중이다. 무궁화꽃에 피부트러블 치료 성분이 있음을 밝혀낸 연구 결과에 따라 삼천리, 자명, 심백을 계약 재배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장호농원은 3천평을 추가 경작했다. 무궁화는 잎에만 약효가 있는 게 아니다. 목근피(뿌리), 잎, 줄기도 약품이나 식품화 사업이 진행중이다. 작년부터는 무궁화식품연구소에는 생꽃을 납품중이다. 무궁화차 블렌딩, 무궁화술을 준비하는, 국무총리상도 수상한 유망 청년기업이다.
무궁화 화훼는 물론 식품 의약품 산업의 기저는 무궁화연구자들의 외길 노력이다. 1996년 유달영 박사는 전국무궁화연구회를 출범시킨다. 소채류 납품, 1년생 초화 사업 등 식물 관련 사업을 해오던 전병열 대표가 무궁화에만 올인하도록 만든 운명적 모임이다. 그때 ‘무궁화와 나리 연구소’ 심경구 박사도 만났다. SD생명공학에서 주문한 3품종 계약도 심경구 박사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것이다. 무궁화꽃의 수명은, 실은 하루뿐이다. 다음날 다른 꽃이 나오니까 계속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심박사는 사흘 동안 지속적으로 피는 품종도 개발했다. 삼일홍이다. 3년 자라도 30cm 정도 크기라서 분재용이다.
전병열 대표는 농가로서는 최초로 무궁화를 품종별로 삽목하는 기술을 정착시켰다. 무궁화생산자협회도 생겨나고 그러는 동안 그는 어느덧 무궁화의 대부가 되어 있었다. 투자를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돈은 많이 못 벌었다. 돈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은 백년하청이니, 현재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만 염두에 두고 있다. 무궁화 자전거길이나 무궁화전시동산은 인근에서지만, 필요하다면 삼천리 방방곡곡 망설이지 않는다.
완도군에는 소안도가 있다. 청산도, 보길도 다음으로 큰 섬인 이곳에 3천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섬은 별칭을 얻었는데, 바로 ‘무궁화섬’이다. 2012년 7월 2일 전대표는 소안면장으로부터 면민증 제1호를 발급받았다. 사건이 있었다. 소안면 직원이 장호농원에 무궁화 50주를 발주하였다. 그 섬에는 독립운동기념관이 있고 묘 주변을 장식하기 위해서였다. 어느날 시간 여유도 있고 하여 섬나들이차 그곳을 들렀다. 거기서 만난 황영옥 독립기념사업회장에게 기왕 꾸미는 거, 좀더 꾸미면 좋겠다며 무료 기증을 약속했다. 두 차례에 걸쳐서 트럭을 끌고가 500여 주를 식재까지 해주었다, 퇴비도 함께. 이 일이 기폭제가 되어 면 전체에 무궁화 심기는 물론 태극기달기 운동도 병행하게 되어, 현재는 “무궁화+태극기섬”으로 명성을 휘날리고 있다.
무궁화는 여전히 애국가의 이미지다. 작년에는 3·1운동10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선언 33인 중의 하나인 양현묵 기념관과, 안동 이육사 생가에 ‘화합’ 100수를 기증하였다. 충남교육청사에 멋들어지고 우람한 무궁화도 광석에서 출발하였다. 부여 외산초에 무궁화값만 받고 납품을 했더니 서무과 직원이 씽끗 웃으면서 “심어까지주면 안돼요?” 웃음에 넘어가서 해주니까 소문이 나서 요즘 학교 영업에는 지장이 많단다.
2016년에는 대전엑스포공원 한빛탑 주변에서 무궁화꽃 350점을 한달간 전시하였다. 그때 세계가정학대회차 50여개 국에서 외국인들이 모였는데, 산책하면서 “원더풀~원더풀~”을 연발하였다. 꽃이 귀한 8월, 무궁화는 더 돋보였다. 서양 찬송가에 “샤론의 꽃 예수”가 나온다. 여기 ‘샤론’은 무궁화다.
그러고 보면 무궁화는 고래부터 동서양을 넘나들었다. 산해경에도 나오고 쌍계사 꽃무늬에도 등장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건만 남궁억 같은 분이 나서서 민족혼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였고, 민간에서는 정부 보조 없이 무궁화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연구 결과를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꽃피워온 사람이 논산 광석에 있다. 사람 좋은 사람, 퍼주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일상의 삶을 영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있다. 30년 전부터 알게 되어 우정을 이어온 전상근 소장이다. 그는 얼마 전 엑스포 관리소장을 정년한 뒤, 현재는 전대표와 함께 광활한 무궁화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큰 경영의 흐름을 이해하면서도 손익계산서를 보고 있노라면 맘이 편찮다. 그러나 그는 안다. 전대표가 벌고 싶어하는 것은 당장 주머니 돈이라기보다 사람임을.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왜 그리 꼬여서 팬클럽까지 극성인지를.
[글.사진] 이지녕 기자
위 글은 『놀뫼신문』 2020-08-12일자 7~8면에 실렸습니다.
이 글은 아래 기획의 한 부분으로서, 도입부입니다.
리드 = 8·15의 한계는 외세였다. 자력(自力) 독립이 못되었기에 남·북이 갈라졌고, 그 땅금은 아직까지 그대로다. 사람들은 새마을운동 시절을 그리워한다. 동네사람들이 직접 나와서 길도 닦고, 동네일들 상의하고 함께 비지땀을 흘렸다. 보조금이나 지원금은 먼 나라 일이었다. 요즘 시쳇말은 “망국병=공짜병”이라고 한다. 서류 잘 만드는 사람들이 정부돈 다 빼간다고, 뒤에서 쑥덕쑥덕이다.
정부지원금이나 공적자금은 생명줄이다. 단, 적재적소에 대한 시비가 일지 않는 한에서. 2020 광복절 75주년이다. 4반세기가 세 번 된 지금, 이제라도 진정한 광복(光復)의 의미를 찾아서 실천할 시점이다. 올해 테마를 ‘민(民) 주도’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