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의 이야기
"문신 믿고 거름, 문신은 과학"
SNS나 숏츠, 뉴스 등의 주인공에 타투가 보인다면 자주 보이는 댓글이다. 6개의 타투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썩 유쾌한 댓글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추측하는 삶과 관련 없고, 내가 좋아서 했기에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중에 가장 잘 보이는 세 개를 지우고 왔다. 물론, 한 번의 시술로는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양쪽 손목 안 쪽에 짧은 레터링 타투가 있었는데, 리터칭을 하지 않았음에도 10번 정도의 시술이 필요하며 갈색 흔적이 남을 수 있다고 하신다. 그래서, 범위가 넓은 것 들은 흉터 때문에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작은 레터링만 오늘 시술을 받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타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은 상황에 글을 남기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타투 왜 했을까?
평소 노출을 좋아하지도 않고, 지하철에서 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직장인으로 20년 이상 살아왔다. 타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그저, 마음이 미친 듯이 힘들 때 내가 늘 볼 수 있는 곳에 잡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보이길 바랐다. 너무 거창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Sustine et abstine '인내하라, 그리고 절제하라'
Que sera sera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 '운명을 만드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내 양쪽 손목과 팔 안쪽에 새겨져 있던 문구이다. 구글링 한 거라 원문의 정확한 의미는 아닐 수도 있다. 이 타투들은 2014년, 내가 살기 위해 이 악물고 이혼을 실행하며 새긴 거다.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겠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참고 노력하다 도저히 안 되겠을 때 던진 결정이라 후회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만, 아이를 봐주시며 옆에서 가장 가까이 봐오신 엄마는 내 의사를 무조건 존중하셨지만, 아빠는 다르셨다. 아빠의 철없는 결정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어린 딸을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다는 다짐이었다. 그때 새긴 타투를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럼, 왜 지우는 건데?
현실적인 이유로는, 20년 넘게 몸 담은 IT 산업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 사회는 타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내가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하게 될지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 일하면서 한 번도 타투를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낯선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미리 준비하면 나쁠 건 없겠다.
두 번 째로, 타투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다. 타투가 절실했던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때는 그것들이 힘이 되었을지언정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 내 삶을 쥐고 흔들만한 큰 메시지는 아니었나 보다. 시간이 흘러 번지고 뭉쳐 외관적으로도 좋지 않고 메시지가 주는 의미도 흐려졌으니 계속 갖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지우고 난 뒤...
수면 마취 후 한숨 길게 잔 것 같은데 10여 분 지나있었다. 하얀 드레싱을 여기저기 한 상태로 어리둥절하며 병원을 나섰다. 드레싱 안쪽이 너무 궁금했지만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내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집에 가는 버스가 유난히 흔들려 손목 드레싱이 흘러내렸다. 많이 지워졌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직도 누가 봐도 '타투' 그대로이다. 옅어진 라인도 있지만 이제 첫 번째니 3개월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해야 좀 지워졌다 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멈출 수 없다. 비용과 시간이 들어도 끝까지 다 지워내야겠지.
강남역에서 집으로 오는 덜컹거리고 불편한 버스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타투를 처음 했을 때, 딱 10년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엄마를 너무나 좋아하던 아이는 내가 키워야겠단 생각에 모두 포기했던 나, 지금 생각하니 안쓰럽기보다는 너무 멋진 걸. 그렇게 만들어 낸 새로운 삶인데, 지금 나는 왜 힘들까.
그리고 돌아보니 늘 화가 나 있는 내가 보인다. 얼마 전 엄마가 내 다리에 대해 얘기한 것도, 평소 같으면 '엄마!' 이러고 웃고 말았을 텐데, 그날 나는 화를 냈다. 오늘은 병원 가느라 학원에 못 데려다 주니 알아서 잘 가라고 당부하고 나왔는데, 배 아프다고 쉬고 싶다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진짜 배가 아팠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난 아이 라이딩만 할 수 있는 팔자는 안 되는데, 일을 해야 하는데 나만 없으면 더 흐트러지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역효과만 나는 걸 알면서도, 한 번만 더 빠지면 학원을 끊겠다고 또 협박을 해 버렸다.
부족한 엄마 같으니... 요즘 새로운 도전과 기존 일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이 심했다. 내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애꿎은 엄마와 아이에게 책임을 돌리며 화풀이했음을 깨닫고 미안함에 마음이 아팠다.
내 마음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타투 얘기로 시작해 자기반성으로 끝나는 이상한 글이지만, 한 가지 메시지는 남기고 싶다.
"온몸에 까맣게 좋은 문구를 새긴다 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혹시, 마음이 힘들어 타투를 새기고 싶으시다면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달라요. 지금 타투를 새겨서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기는 게 확실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좀 더 나아지기 위해 하는 결정이라면 심사숙고하시길 바랄게요.
뻔한 이야기지만, 지우려니 약 30개월 이상 걸리고 비용도 새긴 금액의 최소 10배 이상은 든다는 것을 살짝 알려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