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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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점 미쳐갑니다.’
빨간 잉크로 휘갈겨진 구호가 적혀 있던 조립 공장 지붕 위로 한 여름의 햇볕은 모든 것을 말려 죽일 기세다. 그 고립 속에서 현은 오직 시원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은 생각 밖에 할 겨를이 없다. 지붕 여기저기에는 헬기에서 떨어진 최루액이 담긴 비닐봉지가 동물의 사체처럼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웠던 소란이 잠시 조용하다. 공장 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농성자 가족들의 천막을 기어코 사측과 용역 깡패들은 철거해 버렸다. 천막이 찢겨나가고 사람들이 발악을 하는 동안 8월의 뜨거운 하늘 위로 YB의 ‘오 필승 코리아’는 무심한 듯 울려 퍼졌다.
마지막 교섭이 결렬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그들은 새벽부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걸 각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가슴속에 새겨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통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것은 현실적으로 줄어들어버린 희망을 애써 부정하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때였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죽지 않고 초라하게 다시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무자비한 무더위와 갈증 속에서 어쩌면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붕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섬뜩한 컨테이너 박스의 압도적인 모습에 현은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기중기에 매달린 두, 세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서서히 위로 올라오면서 안에 있던 경찰특공대원들은 동료들을 향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사정없이 발사하기 시작한다. 물대포에 맞은 동료들은 맥없이 쓰러지고 뒤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몇몇이 그만 지붕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현은 목격한다. 도망가는 동료들에게 용역과 사측 구사대는 무지막지한 볼트새총을 쏘아댄다. 하늘에선 최루액을 가득 실은 헬기가 퇴로를 향해 최루폭탄을 떨어뜨리고 건물 밑에서도 경찰특공대를 엄호하기 위한 물대포가 사정없이 치솟는다.
현은 정신을 반쯤 잃어버린 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 모두 그 모습을 보면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들이 들고 있는 쇠파이프는 한낱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다.
컨테이너 박스가 안전하게 지붕 위에 안착하자 그 안에서 검은 경찰특공대들이 하나둘씩 내려오기 시작한다. 현은 지친 몸을 이끌고 미친 듯이 도망친다. 그러나 몇 걸음 달리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만다.
현은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채 그저 ‘웅웅’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그 상태로 현은 경찰특공대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맥없이 지켜본다. 이미 넋을 잃은 사람처럼 이제 자신에게 닥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는 채, 마치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처럼 현은 특공대의 신들린 폭력을 지켜본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쇠파이프로 저항하는 동료들의 목을 방패로 가격해 쓰러뜨린 다음 두, 세 명이 달려들어 1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진압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움직임이 없을 때까지. 그렇게 한 사람씩 차례로 제압하면서 경찰특공대들은 서서히 현에게 다가온다. 현이 있는 자리 주변에는 볼트가 사정없이 내리 꽂힌다.
헬멧과 보호구를 착용하고 방패와 진압봉을 든 채로 달려오고 있는 경찰특공대들의 모습이 도저히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꿈을 지켜보는 것 같은 몽롱한 느낌이다. 숨이 막히고 오줌을 지릴 것 같다. 그런 현 앞으로 검은 특공대원 한 명이 천천히 다가온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진압봉을 들어 올린다. 진압봉이 햇빛에 반사돼 눈이 부시다.
“퍽”
현은 수치스럽게 몸을 애벌레처럼 동그랗게 만다. 그 몸뚱이 위로 경찰특공대들의 폭력이 사정없이 내리 꽂힌다. 그리고 그 순간 물속에 잠수했다가 수면 위로 얼굴이 떠오른 것처럼 갑자기 모든 소리들이 다시 사정없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구타 소리와 신음 소리, 고함소리, 헬기 엔진소리가 정신없이 달려든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현은 끝이 없을 것 같은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다.
“퍽”
“퍽”
“죽어 이 씨발 놈아, 아, 개새끼들 진짜. 야! 씨발 거기 안 잡아! 똑바로 안 해!”
“퍽”
“퍽”
몽둥이는 현의 허벅지와 등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방패는 현의 웅크린 배를 집요하게 찔러댄다. 그리고 등이었을까? 아니면 목이었을까? 척추가 이어진 그 어딘가에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찌릿한 충격이 느껴진다. 서서히 의식을 잃는다. 그리고 통증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한다. 버려진 짐짝처럼 그저 자신에게 내리 꽂히는 폭력을 받아들일 뿐이다.
“퍽”
“퍽”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폭력의 아우성이 점점 아득하게 들려온다. 저 멀리, 육신은 그렇게 뭉개지고 있는데 현은 그 육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사위어 가는 폭력의 아우성을 듣는다.
“퍽”
“퍽”
“퍽”
“쿵”
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샤워기 걸이가 벽에서 튕겨 나왔다. 화장실 폭은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의 머리는 맞은편 벽에 심하게 부딪혔다. 벽에 부딪힌 현의 머리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코와 광대뼈가 바닥에 부딪혀 뼈에 충격이 그대로 전달됐다.
현은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생애 마지막 목소리였다. 벽에 부딪힌 머리와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는 점점 더러운 타일 바닥을 채워갔다. 현은 짧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더 이상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등 뒤로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이 어느새 풀려 있었다. 손가락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잠깐 일었다. 곧 그것마저 사라졌다. 머리와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만이 그 정적 속에서 조용히 하수구 구멍을 찾아 움직일 뿐이었다.
○○기업 해고노동자의 22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지 이틀째 되는 날, 23번째 사망자가 또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2012년 12월 23일 일요일 경기도 평택시 ○○동 인근 한 여관에서 최 모 씨(34)가 화장실에서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여관주인 김 모 씨(54․여)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서 최 씨는 화장실 바닥에 코가 부러진 채로 쓰러져 있었으며 목에 넥타이가 감겨 있던 상태였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최 씨는 2009년 ○○기업 파업 때 공장 안에서 끝까지 남아있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파업이 끝난 후 이렇다 할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심한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이번 최 씨의 죽음으로 2009년 ○○기업 대량 정리해고사태 이후 모두 2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자살,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