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거미
*
두려움은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 어느새 심장에 달라붙는다.
현은 그 두려움을 안고 거꾸로 달리던 버스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딘다. 두려움은 발가락으로부터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땅의 감촉을 따라 어느 순간 심장에서 다리를 향해 기어간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두려움인지, 두근거림인지 정확히 분간할 수가 없다.
버스 안에서 현은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을 향해 맹렬히 달려드는 햇살을 목격했다.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으로 미뤄 볼 때 아마도 이제 막 벚꽃 잎이 만발하기 시작하던 봄이 아니었나 싶다. 잘게 부서지며 흩뿌려지는 햇살의 눈부심은 서럽도록 황홀했다. 그런 감정을 느낀 순간, 현은 마치 속마음이라도 들킨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버스 안을 둘러봤다. 다행히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몇몇의 사람들은 차창 밖 풍경에 황홀해하는 현 따위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처음으로 현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은 어둠이 빼곡히 쌓인 음산한 건물 안에서였다. 건물을 짓다가 도중에 포기해 버린, 콘크리트가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그런 건물이었다.
현은 자신이 왜 이런 건물 안에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현의 옆에는 한 사람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그 사람과 익숙한 발걸음으로 건물 어딘가에 들어섰을 때, 현은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많은 시체들과 마주쳤다. 시체의 얼굴과 형태는 그저 흐릿할 뿐이었고 시체들은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것 같았다. 스무 구가 넘어 보이는 시체들을 바라보며 전혀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 자신이 오히려 두려워 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식은땀을 흘리며 왜 자신이 이런 광경에 익숙한 것인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이가 중얼거렸다.
“한쪽으로 놔, 한쪽으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시체를 벽돌 쌓듯 차곡차곡 쌓았다. 시체를 드는 데 힘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시체를 쌓던 도중 갑자기 기억은 끊겨 버렸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언제 건물 안에 있었냐는 듯 현은 방금 전까지 거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다 지금 막 발을 땅에 디딘 것이었다.
버스가 후진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간다. 현은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아마도 한적한 시골 국도변인 것 같다. 붉은색 벽돌로 아담하게 지은 정거장 앞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고 들판을 가로질러 난 작은 시멘트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있다. 길이 끊기는 곳에 집들이 몇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길 초입에는 마을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을 고목나무가 인심 좋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그늘 아래 널따란 평상이 놓여 있다. 그 평상 앞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내린 것 같다고 현은 근거 없는 확신을 한다.
현의 발걸음은 2차선 국도를 가로질러 시멘트 길이 뻗어있는 곳으로 향한다. 길을 따라 고목나무로 향하는 동안 햇살은 현의 몸에 스며든다. 한창 햇살을 받아먹고 있는 나뭇잎들과 산자락에 흩뿌려져 있는 진달래, 철쭉의 향기를 실은 바람이 뺨을 스친다.
고목나무에 거의 이르렀을 때 뒷모습을 드러내며 서 있는 이가 여자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선영이라는 것을 현은 직감으로 확신한다.
“선영아.”
현은 선영을 조용히 부른다. 하지만 선영이라는 확신이 드는 그 여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선영아.”
현이 다시 소리를 좀 더 크게 올려 부른다. 그러자 천천히 그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 여자가 뒤를 돌아 현을 바라본 순간, 계속해서 온몸을 휘감고 있던 두려움의 이유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두려움은 기어코 현의 심장 속에서 튀어나오고 만다.
‘헉!’
뒤돌아 선 여자는 분명 선영이가 맞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왼쪽 머리가 움푹 파인 채 찢어진 부위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원피스 앞을 다 적시고 있다. 그리고 피부가 벗겨진 왼쪽 얼굴에는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다. 끔찍한 모습이다.
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 그러자 선영이 웃으며 한 걸음씩 현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오빠.”
선영이 현을 부른다. 부르면서 계속 현에게 다가온다.
“오빠.”
선영이 웃는다. 선영의 웃는 모습이 징그러워 현은 오금이 저리지만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식은땀이 흐른다. 선영은 현을 덮칠 듯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현이 오빠.”
선영이 현을 부르며 손을 뻗는다. 손이 어깨에 닿은 것 같다.
“왜 이제와, 기다렸어.”
선영이 갑자기 악마처럼 웃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너무 무섭다. 현의 어깨에 닿은 선영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갑자기 현의 상채를 자신을 향해 끌어당긴다. 현의 몸속으로 선영이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소름이 돋는다.
“안 돼!”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눈을 뜬 것 같은데 기억이 끊겨 버린 것인지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다. 한참 숨을 몰아쉰 뒤에야 현은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독하게 반복되는 악몽을 또 꾼 것이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다.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현은 볼을 타고 내려오다 멈춘 땀의 감촉을 느끼며 거친 숨을 계속 몰아쉰다. 진정이 될 때까지 천장을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눈동자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곰팡이가 낀 더러운 벽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딱, 딱, 딱……”
놀란 가슴을 어느 정도 쓸어내리자 현은 뒤늦게 갈증을 느낀다. 물에 빠진 스펀지처럼 묵직한 몸을 사력을 다해 일으킨다.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발을 땅에 디디고 허리를 세워 일어나려는 그 순간, 무언가 오싹한 기운이 현의 등을 쓸어내린다. 자신의 몸에 있던 모든 털들이 주뼛 서는 느낌이 든다. 현은 굳어버린 고개를 천천히 들어 앞을 바라본다. 그러자 언제부터인지 화장실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눈빛과 눈이 마주친다.
커다란 덩치에 구부정한 어깨, 묵직한 느낌의 그 존재는 한 마리의 곰을 연상시킨다. 작은 움직임도 없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현을 계속 노려본다. 어둠에 묻힌 존재의 눈빛은 깊고도 아득하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두 개의 구멍은 절규하듯 현의 시선을 갈구한다.
현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그 눈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직도 꿈인가?’
현은 지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다만 규칙적인 초침소리가 반복될수록 어느 순간부터 또 다른 소리가 귓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젠 익숙한 소리다.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소리.
그 소리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다. 언젠부터인가 가슴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느닷없이 튀어나와 습관처럼 가슴과 뇌를 후벼 파는 소리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그 내부의 소리는 다시 한번 심장과 뇌를 잔인하게 갉아먹기 시작한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오-레, 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