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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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 동료들과 헤어져 장례식장을 홀로 빠져나온 건 새벽 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무리라고 해봤자 텅 빈 빈소 안에 대여섯 명이 전부였다. 이제는 더 올 사람도 없는 빈소였다. 몇 시간 뒤면 발인을 할 예정이었다. 유가족들도 더는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휴게실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이고 있었다.
더는 할 말도 딱히 없는 우리들은 쓸쓸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식은 육개장과 땅콩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던 중 아침 일찍 어린이집 버스를 운전해야 한다며 현성이 형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형은 끝까지 남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남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현성이 형은 마지막으로 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그렇게 떠나가는 형의 모습을 바라보다 현은 무언가에 홀린 듯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형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차마 형을 부르지는 못했다. 그저 장례식장 입구에 주차해 둔 관광버스의 뒤꽁무니에 몸을 숨긴 채 현성이 형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볼 뿐이었다.
“이 씨발 놈들. 진짜 죽이려고 눈깔이 뒤집어졌네. 이 개새끼들. 그래 씨발, 쪄 죽나, 맞아 죽나, 한 번 해보자고. 현아, 이 새끼야 너도 이거 먹고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죽더라도 쪽팔리게 죽진 말아야 돼.”
무더위와 불면에 지친 현이 결국 탈진을 해 3일 동안 누워 있을 때, 현성이 형은 식사시간이 되면 고추장을 묻힌 주먹밥을 가져다주면서 투덜거렸다. 언제나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던 현성이 형은 사람들이 지쳐있을 때 흥이 나도록 노래를 부르고 장난도 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던 그런 형이었다. 그렇게 7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고목처럼 굳건하게 동료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현성이 형의 모습이 오늘은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 같았다. 현은 형의 모습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위어 들 때까지 애꿎은 담배만 태울뿐이었다. 담배를 태우며 현성이 형에게 하고 싶었던 몇 마디의 말을 씁쓸하게 안으로 삼켜야 했다.
담뱃갑에 들어있던 몇 개비의 담배를 모두 태우고 나니 더 이상 빈소로 들어가 자리를 지킬 엄두가 나질 않았다. 도저히 수혁이 형의 마지막을 따라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현성이 형이 걸어간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을 나와 조금 걸으니 바로 8차선 대로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밤안개 자욱이 깔린 어둠의 공기를 뚫으며 간간히 헤드라이트 불빛들은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길을 트고 있었다. 불빛들은 모두 세상의 고통을 잊으려는 듯 몽롱하게 취한 것 같았다. 밤거리를 수놓았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화려한 조명들도 아침을 위해 잠들어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현의 발걸음은 대로를 지나 아직 불빛이 화려한 유흥가를 가로질러 다시 인적 끊긴 더러운 뒷골목에 다다랐다. 또다시 구불구불 이어진 발길 끊긴 골목길을 도망치듯 숨죽여 걷던 현의 발걸음은 작은 여관 불빛 앞에 멈춰 섰다. 낡고 허름한 ‘낙원장’이었다. 맞은편에는 여인숙만큼 허름한 구멍가게가 아직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 현은 구멍가게에 들어가 소주 두 병과 땅콩을 샀다. 그리고 ‘낙원’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춥고 피곤했다. 그래서 눈을 붙이고 싶었다.
- 현아……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에 묻혀있던 또 다른 소리를 들은 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응시한 지 꽤 시간이 지난 뒤다.
현은 정신을 집중해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작은 소리는 흐느낌 같기도 하고 웃음소리 같기도 하다. 이미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 현아…… 현아……
분명, 그 눈빛이 현을 부르는 소리다.
- 현아…… 미안해. 미안하다, 현아.
신음하듯 가녀린 목소리였지만 현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단 번에 알 수 있다.
- 미안하다 현아, 그렇게 됐어. 미안해…… 미안해 현아.
현을 계속 부르는 가녀린 목소리. 멍하니 어둠에 묻혀 있는 아득한 눈빛을 바라보며 현은 선뜻 입술을 떼어 대답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 현에게 계속 다가오는 그 소리. 현의 귓속으로 조바심 내며 달려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현은 자기도 모르게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 형? …… 수혁이 형?
눈빛은 대꾸하지 않는다. 현은 다시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 맞지? 형, 형인 거 다 알아. 근데 왜 여기 있어?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어? 이제 가야지. 몇 시간 뒤면……. 형 이제 가야지.
그때였다. 미동도 보이지 않던 존재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약간의 떨림. 현은 어둠 속에서 눈을 최대한 크게 뜬 채 존재를 응시한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현은 바라본다. 흐느낌이 분명하다. 존재는 조금씩 몸을 떨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 형, 수혁이 형…… 왜 그래? 울지 마 수혁이 형.
- 네 얼굴 보려고 잠깐 왔어…… 그냥 미안해서 왔어 현아.
흐느낌 속에 눈빛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한다. 현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 어? 왜 수혁이 형, 뭐가 미안해.
- 네 이름 불러보고 싶었어.
- 어? 뭐가 미안해 형, 왜 그래? 어? 형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 미안해 현아.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 알아. 힘들었겠지. 근데 예나 그렇게 버려두고 왜 그랬어? 어?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해서 뭐 해. 뭐 하냐고.
-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알았다면 그때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내가 그러는 게 아니었어.
존재의 흐느낌은 조금씩 커져갔다.
- 됐다니까. 뭘 그렇게 안 해? 형 때문에 나도 버티고 있었는데? 어?
- 현아…… 나 외로워서 그랬어. 아무도 없더라. 아무도 없어서 외로워서 그랬어. 현아 춥다…… 여기 너무 추워.
현의 얼굴 표정은 이미 충분히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고 눈빛으로 내뱉는 말들도 흠뻑 젖어있다. 그리고 수혁의 울먹임이 커지는 만큼 현이 뱉어내는 눈빛들도 두서없다.
- 나도 외로워 형. 나도 지금 사는 게 아니라고. 숨만 쉬는 거야. 그래도 살아야 하는 거잖아. 형이 그렇게 말했었잖아. 우리 모두 나갈 때 그렇게 약속했었잖아. 근데 형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 나도 외로워. 형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예나는 어떻게 하라고? 선영이 그렇게 먼저 보내고…… 선영이가 그러면 좋아할 것 같아? 형이 나보고 그랬잖아. 우린 죄지은 게 아니라고. 근데 형 왜 그랬어? 어? 형! 대답 좀 해봐!
현은 눈빛으로 오열한다.
- 미안해. 현아.
미안하다는 말에 현은 순간 화가 치민다.
- 아 씨발! 좀…… 미안해하지 말라니까. 뭐가 미안한데? 형, 나도 이제 씨발 아무도 없어. 이제 형도 없고 정말 아무도 없어. 나 부모도 없고…… 어? 형? 나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존재는 어깨를 심하게 들썩이며 흐느낀다. 현은 존재의 흐느낌이 점점 참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온다. 가슴과 뇌를 갉아먹는 그 소음처럼 영혼이 잠식당하는 것만 같다.
- 형, 울지 마, 수혁이 형…… 어? 울지 말라고. 제발……
그러나 존재의 흐느낌은 더욱 간절하게, 절실하게, 고통스럽게, 커져 간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 흐느낌은 결국 방안을 가득 채운다. 현은 그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떼 소리를 지른다.
“아 씨발 진짜 울지 좀 말라고!”
힘들게 입 밖으로 내뱉은 욕지기는 더러운 여관방으로 공허하게 흩어진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정적과 함께 흩어지는 소리처럼 욕실 안의 그 존재는 쓸쓸하게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눈빛이 사라진 뒤에도 흐느낌은 아주 작게 현의 귓바퀴를 맴돈다.
- 현아…… 외로워서 그랬어. 현아, 나 외로워서 그랬어.
현은 이미 얼굴에 선명하게 선을 새긴 눈물 자국을 손으로 뭉개고 숨을 고른다. 아직도 지금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침대에 걸터앉았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형광등 스위치를 올린다. 형광등이 몇 번 요동을 친 뒤 어둠을 삼켜버린다. 현의 앞에는 소주병과 아무렇게나 벗은 옷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
현은 다시 화장실을 바라본다. 안에는 조금 전에 서 있던 눈빛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열려있는 문 사이로 변기와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이 보일 뿐이다. 거울에 비친 어둑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까칠한 피부, 무표정하게 푹 파인 눈빛에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들. 생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현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천천히, 주섬주섬 집어 든다. 구겨진 와이셔츠를 집고, 줄이 선명하게 서 있는 양복바지를 집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져있는 양복 상의를 집어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던진다. 그러자 방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말린 양말과 올가미처럼 둥근 아가리를 벌린 채 버려져있는 검은색 넥타이만이 현을 노려본다.
현은 넥타이를 조심스레 집어 든 뒤 침대에 걸터앉아 넥타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일그러진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조금씩 만지작거린다. 싸구려 넥타이의 감촉은 빛바랜 추억만큼이나 까칠하다.